남우주 인천 연수구 송도동 주민

주부에게 외식만큼 달콤한 말이 있을까. 최소 90분의 가사노동이 줄어드는 일이니, 말이 나왔을 때 재빨리 현관문을 나서야 한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메뉴 정하기는 힘들어진다. 가끔 다수결로 평화롭게 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양보의 미덕이라든가 훗날을 도모하는 대범함이 없는 우리 가족은 자신의 혀끝 미각을 놓고서 티격태격한다. 이때 웰빙이니, 건강이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간 꼰대 취급을 당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메뉴를 정하고 식당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내 마음은 불편해지기 일쑤다. 어린 막내를 위한 상차림은 알록달록, 사용감이 여실한 플라스틱 일색이다. 꼬마손님을 위한 식당의 배려이다. '플라스틱은 오래 쓰면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던데.' 께름칙한 마음에 뜨거운 음식은 도자기 그릇이나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덜어 준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엄마니까.

일주일에 두 번, 우리 아파트에 오는 순대트럭의 무쇠가마솥 안에서는 포장지 째 순대가 쪄지고, 동네 김밥집은 밥이 마를 새라 비닐봉지 안에 밥을 담아 전기밥솥에 보관하고 있다. 비닐 팩으로 2~3개씩 소포장된 옥수수들이 찜솥에서 장시간 익어가는 풍경 또한 흔하다. 시중에 판매되는 즉석밥은 다 된 밥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포장용기째 밥을 하는 공정이다. 컵라면을 비롯해서 편의점에서도 플라스틱과 비닐이 열에 노출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식품용 플라스틱·비닐은 PP(폴리프로필렌)와 PE(폴리에틸렌)로 유해물질은 물론 환경호르몬에 안전하다고들 말한다. 과학적으로 입증될 때까지 찜찜한 것이 기업 또는 누군가의 이익과 결부되어 안전한 것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친환경' 혹은 'Free'라는 말도 단정지은 부분을 놓치고 읽으면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다.

환경호르몬은 내분비 교란물질로 몸속에 들어와서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성호르몬 수용체와 쉽게 결합하여 호르몬 분비 불균형, 생식기능 및 생장 저하, 면역기능 저해 등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하다. 나이가 어릴수록 생체호르몬 작용이 활발하기 때문에 환경호르몬 피해 또한 크다. 합성화학물질 대부분이 잠재적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험하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위험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라는 사전주의 원칙이 적용돼야 할 분야이다.
과거에 비해 환경호르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그래도 고무적인 일이다. 언론매체가 지속적으로 다루면서 일반인들도 많이 각성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주방을 둘러보며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버리세요', 플라스틱 채반에 뜨거운 국수를 헹구는 모습에 '안 됩니다'를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생소하게 다가오지 않으니 말이다.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열과 기름을 만나면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는 설은 일반적이다. 이곳에 음식을 담아 장시간 열에 노출하는 상황을 줄였으면 한다. 1인 및 맞벌이 가구의 증가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즉석식품도 많아졌다. 기름기 있는 음식이라면 더더욱 다른 용기에 옮겨 데우는 습관을 들이자. 지금 당장 이상 징후가 없다고 넘길 일이 아니다. 눈앞의 이익이나 편리에 우리 건강이 담보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