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이 도시문화콘텐츠 기획자


서점 여행 책 코너에 세계지도 엽서와 여행 일기장, 그리고 목베개와 가방까지 함께 비치된 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장면이 아니다. 하나의 오브제를 중심으로 그와 연관된 다양한 온·오프라인 콘텐츠들이 제공되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각자의 색깔을 찾는다.
A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B를 찾을 것이라는 취향을 기반한 큐레이션. 나의 취향을 따라 여행하는 우리는 삶을 디자인해 나가는, 이른바 '라이프스타일'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라이프스타일을 판다고 감히 소개되는 곳이 있다. 일본의 CCC(Culture Convenience Club)에서 만든 츠타야 매장이다. 서점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기업이다. CCC의 츠타야 서점은 일본 전역 각 매장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인이라 할 정도로,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CCC의 창업가인 마스다 무네아키 사장은 2015년 그의 경영 철학을 담은 <지적 자본론>이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기업이 물건과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재무 자본에 의존해 왔다면 이제 기업의 성패는 기획의 힘, 즉 지적 자본에 있다고 말한다. 이에 덧붙여 서점은 서적을 판매하면 안 된다는 의아한 발언을 한다. 서적 그 자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제안하고, 그 제안은 찾아오는 이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의 멋진 철학을 엄청난 장소로 환원시킨 츠타야 서점은 이러한 배경에서 고객만큼이나 더 많은 벤치마킹객을 불러 모았다. 츠타야 서점의 노하우를 적용한 다케오 시 공공 도서관까지 주목받으며 우리네 학생, 기업인, 공무원 등 각계각층의 배움터가 됐다. 비단 츠타야의 영향만은 아니었겠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라이프스타일, 취향, 큐레이션 등의 단어는 매우 익숙해졌고, 벤치마킹 리스트에 츠타야 서점이 있었을 법한 공간들이 꽤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업(業)의 연장선 상에서, 그리고 개인의 흥미 안에서 나는 이러한 공간을 꽤 많이 방문한다. 특히 재생과 뉴트로(New-tro, New+Retro)의 대유행과 더불어 버려진 혹은 기존의 공간을 활용한 콘셉트가 전국구 단위로 대거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이러한 공간에 전혀 감흥이 나지 않는다.
라이프스타일을 찾아 나서볼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들어간 몇몇 공간은 그저 트렌드를 지향하는 시대인으로서, 소위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 한 장으로 보답받기 일쑤다. 몇몇 큐레이션은 그 구성을 동일하게 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또다시 전형적인 유행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양새만 비슷한 공간들 속에서 허황됨을 느낄 때, 우연한 기회에 가장 최근에 출간된 츠타야의 마스다 무네아키 대표 관련 책을 접하게 됐다. 인터뷰 형식으로 엮은 <츠타야, 그 수수께끼>에서는 <지적자본론>보다 심화된 그의 경영 철학, 그 너머 한 CEO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그는 토목건축과 유곽 운영을 하는 가문에서 자랐다. 어렸을 적부터 그의 집에는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자연스레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보고 듣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늘날 그가 회사를 경영하며, 사람에 집중하는 이유도 어렸을 적부터 키워온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찰력에 기반했을 것이다. 츠타야 서점은 한 CEO의 경영에 대한 철학에서 피어난 작품이었고, 그 철학은 그 CEO가 나고 자라난 공간과 시간이라는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살아온 길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가 창업을 한 1982년에 쓴 글 <창업의 의도> 내용이 인상 깊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거점', '소통의 장소'. 31살의 그가 세운 CCC의 지향점은 현재까지 CCC가 만들어내는 장소와 서비스를 통해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츠타야 서점은 어느 날 단순히 삶의 방식(라이프스타일)을 논하는 유레카적인 발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깊은 고찰을 바탕으로 한 긴 고민과 시도의 시간에서 비롯된 정수(精髓)인 것이다.

나무를 이식할 때 그 주변의 흙을 함께 담아야 낯선 땅에서 그 나무가 조금은 덜 힘들게 적응한다고 한다. 우리도 무언가 좋은 것을 만날 때, 나무보다는 그 뿌리, 그리고 주변의 흙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성공적인 사례를 담는 벤치마킹의 여정이 현재의 단면만을 수집하는 행위가 아니길 희망한다. 카메라 속에 시간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보이는 것 너머의 기획, 그 기획이 탄생한 스토리, 배경 등을 고찰해보는 것이 진정 좋은 사례를 검토(벤치마킹)해보는 방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