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6. 우리들의 기억법] 5. 거리로 나선 최영이씨
[2014.04.16. 우리들의 기억법] 5. 거리로 나선 최영이씨
  • 이은경
  • 승인 2019.0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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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처럼 생각한다면 세상은 분명 달라져요"
▲ 2014년 4월16일 믿을 수 없는 참변에 세 아이 엄마의 마음으로 내일인 양 거리로 나와 진실규명을 위친 최영이씨. 최씨는 "피해를 입은 사람보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더 분노한다면 그 사회는 정의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세 자녀가 있는 부모의 마음으로
내 아이들에게 벌어진 참변인 듯
리멤버 0416 회원으로 시위 동참

'잊지않겠다' 유가족과 약속 위해
장대비·추위에도 진실규명 외쳐

'우리 사회 과연 안전해졌을까?'
5년 지났지만 물음표는 그대로
고통으로 소외받는 이들도 여전
피하지 말고 같이 손잡아 줬으면





2014년 4월16일. 당시 세 아이의 엄마였던 최영이(41)씨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이 땅에 살면서 갖가지 대형 사고를 간접 경험했던 그가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상처를 입은 날이었다.

그날 고1, 초5, 100일 된 아이들의 엄마였던 최씨는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하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고 소식 이후, 단원고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는 오보를 믿으며 그나마 안도했건만 뒤이어 들려온 침몰소식과 배에 탄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말조차 이을 수 없었다.

큰 아이 또래 친구들이 떠난 수학여행이 말 못할 비극으로 변했다는 사실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컸다.

마치 내 아이에게 벌어진 참변인 듯 저민 가슴을 움켜쥐는 것이 그날 최씨가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고1인 내 아이는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데. 내 아이를 잃은 것 마냥 자꾸만 아이들 얼굴만 보게 되더군요. 4월16일 그날 저를 비롯해 전국의 모든 엄마 아빠들은 배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마치 자신의 아이들인 양 괴롭고 비참하고 슬퍼했을 겁니다."


▲엄마의 이름으로, 거리에 서다

최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엄마이름으로 오지숙씨가 광화문에서 피켓 시위를 벌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인 리멤버 0416 회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활동은 그해 8월부터다. 인천 회원들을 만났고 인천 리멤버 0416이 꾸려진 후 그는 2017년 6월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인천 회원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남동구 구월동 로데오거리와 해양경찰청 등에서 시위를 벌였다. 구월동에서 188회, 해경청에서 394회 시위가 있었다.

노란 리본 만들기는 물론 피켓문구, 서명운동 등도 모두 엄마 아빠 회원들이 직접 나섰다. 장대같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우비를 입고, 한 겨울에는 옷을 껴입고 거리로 나와 세월호 진실 규명을 외쳤다.

"세월호 진실을 못 밝히는 건지, 안 밝히는 건지 참 답답했어요. 시위가 100회, 200회, 300회를 맞을 때마다 더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나 대신해줘서 고맙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면 오히려 더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죠."

특히 단원고 유가족들을 만났을 때 그는 여러 감정에 휩싸였다. 자식을 잃은 아픔이 실감나게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단원고 유가족들을 만났을 때 약속한 것이 있어요. 끝까지 잊지 않겠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생각했죠. 노란물결을 일으키자. 정치는 바람을 따로 이동한다고들 하죠. 그럼 우리가 바람을 일으키면 정치는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죠."


▲세월호 5년, 소외받는 이들은 그대로

2019년 4월이 됐건만 최씨 팔목에는 여전히 노란 팔찌가 메어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지 5년이 지나며 서서히 사람들 관심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지만 그는 노란 팔찌를 뗄 수 없다. 여전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최씨는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는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2017년 12월 넷째 아이를 낳은 이후 최씨에게는 더 간절한 물음이 됐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다양한 안전사고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세 청년이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지고 25세 청년도 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참변을 당했다.

우리 사회가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한 뉴스들이 끊이지 않는 요즘, 그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한다. 소외받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세월호를 겪으며 사람들이 어려움에 직면하면 회피하기에 급급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같이 손잡아주고 고민해 주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죠.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울 때 회피하거나 떠나지 말자고 말하고 싶어요."

슬픔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며 나의 일로 관심을 가져야 그렇게 세상이 변한다고 최씨는 믿고 있다.

우리나라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슬픔인 세월호를 통해서 그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느꼈다. 가정주부들이, 아빠들이, 학생들이 스스로 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무관심은 결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보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더 분노한다면 그 사회는 정의를 지킬 수 있다고 봅니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분명히 달라질 겁니다."

/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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