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진 사회부 기자

담배 연기가 귤나무들 사이로 피어올랐다. 샛노란 하귤은 가지마다 푸지고, 벚꽃이 막 터지던 제주도의 3월 말. 모처럼 나들이 나온 내 가족들은 나무 끄트머리만 보고 걷고 있었다. 가족들 봄날 감상에 거슬리지 않게 아버지는 흡연을 삼가며 비위를 맞췄다. 마침, 귤나무 아래서 고등학생 대여섯이 쭈그려 앉아 담배 2개비를 돌려 태웠다. 갑작스러운 행인 출현은 예상 밖이었는지 급하게 뒤돌아섰다. 그 모습에 옆에서 한소리 하려던 삼촌은 참고 넘어갔다.

그 무리 뒤로 왕복 2차선 도로 따라 관광버스 몇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관광단지인 중문 근처라고는 해도, 감귤 농장과 당근밭만 즐비한 산길이다. 도로변 '귤 팝니다' 입간판 행렬 가운데 뜬금없는 '제주도 제육볶음' 식당에서 학생들은 점심을 해결한 모양이다.
내 인생 첫 비행기였던 16년 전 고2 제주도 수학여행이 떠올랐다. 수학여행 둘째 날 점심, 고추장 양념을 입힌 돼지고기를 내오던 식당도 이런 산속에 있었다. 4인 식탁에 5명씩 앉게 했다.
제주 돼지라 그런지 음식은 기가 막혔다. 당시 '1인 1닭'하던 남고 학생들 혈기에 고기판은 금방 동이 났다. 우리 먹성을 냉정하게 내려놓고 따져봐도 분명 5인분 양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추가 주문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인천시교육청 홈페이지에 학교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올린 보고서를 보면, 최근엔 초등학교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추세다. 1인당 30만원 남짓이다. 천제연폭포, 성산일출봉, 제주민속촌 등등 서면으로 봤을 땐 10여년 전 내 때 제주도 수학여행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귤나무 아래서 담배 피우던 그 학생들처럼 학교 제주도 수학여행도 어설프게 성인 제주도 관광을 따라 하고 있다. 비행기 귀하던 시절엔 제주도 수학여행은 그 자체로 참신했지만 저가 항공 시대로 들어서며 그 존재감도 줄었다.

여유 있는 가정 자녀들이 많이 가는 인천지역 학교들은 요즘 몇 백만원 주고, 가깝게는 중국, 일본 멀게는 미국이나 호주로 수학여행을 간다. 일반 학생들에겐 아직 먼 나라 얘기다. 학부모 쌈짓돈으로 차려지는 아이들 추억 여행이 좀 더 다채로울 수 있도록 학교 선생님들만 들볶는 건 옳지 않다. 업무적으로 여유도 없고, 해당 전문성도 부족하다. 교육당국과 여행업 등 각종 기관이 머리를 맞대 '가성비 좋은 수학여행'을 고민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