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풀뿌리 공동체로서 마을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주민들이 나서서 학교를 세워 자녀를 교육하고, 화재를 예방·진화하고, 각종 위험으로부터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있다. 마을의 일을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고 집행하면서 국민주권을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공동체의 일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책임감을 갖게 된다. 이를 통해 주민은 비로소 시민으로 탄생하게 된다.

지방자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주민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지는 자치의식을 함양할 기회가 없다. 주민이 가만있어도 생활안전과 소방, 교육문제 등 마을문제를 먼 거리에 있는 국가나 시·도가 다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자치경찰도 역시 기초정부는 배제되고 광역정부 중심이다. 이로써 마을의 기본적인 기능이 모두 박탈되어 주민은 문제해결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의 객체가 된다. 교육자 중심, 소방관 중심, 경찰관 중심의 행정으로 변질된다. 자치는 무늬만 남는다.
자치경찰은 지역치안 문제를 주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주민들이 나서서 생활의 안전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주민에 의한 자치경찰이지 경찰관에 의한 경찰자치가 아니다. 이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기초정부 중심을 자치경찰을 도입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도 2006년 기초중심의 자치경찰모델을 제주도에 도입했다. 지난 13년간의 시범실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무늬만 경찰'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기초정부를 배제하고 시·도 중심의 자치경찰을 도입하려고 한다.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시·도 자치경찰은 또 하나의 국가경찰일 뿐이다. 주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자치경찰은 시·도에 자치경찰본부를 두고, 시·도경찰위원회가 지휘·감독한다.
시·도 경찰위원회는 시·도지사가 지명한 1명, 시·도의회가 2명, 법원이 1명, 국가경찰위원회가 1명을 추천하여 시·도지사가 임명한다. 자치경찰본부장은 시·도 경찰위원회의 추천으로 시·도지사가 임명한다. 민주적 정당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자치경찰은 주민과는 무관하게 구성된다. 주민에게 책임도 지지 않는다. 시·도지사의 경찰위원 임명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자치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명분으로 시·도지사의 자치경찰본부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은 배제된다. 시·도 경찰위원회가 자치경찰을 지휘·감독을 하지만, 시·도의 경찰위원회는 아무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자치경찰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주민과 지방정치인을 통제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주민이 경찰을 통제하자는 것이 자치경찰의 본질인데, 경찰이 주민을 통제하는 결과가 된다. 이는 결국 '무늬만 자치'이지 실제로는 변형된 국가경찰이다. 주민의 자치경찰이 아니라 '경찰관 자치'로 변질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자치경찰에 필요한 비용을 누가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지방은 비용만 부담하고 자치권은 갖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열악한 지방재정이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다. 또한, 자치경찰에 관한 법률적 근거도 없이 서울, 제주, 세종 등 5개 시·도에서 시범실시하려고 한다. 법치국가의 원칙상 가능한 것인지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

자치경찰의 법적 근거를 국가경찰과 묶어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법률'로 제정하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되면 자치경찰은 국가경찰의 하부기관이 되고, '무늬만 자치'라는 것을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 결과가 된다. 진정한 자치경찰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법에 자치경찰을 규정하고 세부적인 사항은 조례로 정하거나, 지방자치법에 근거를 두고 '지방자치경찰법'을 별도로 제정하여야 한다. 그 내용도 일상적인 생활치안사무는 기초정부가 책임지도록 하여 주민이 국민주권을 직접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시·도의 자치경찰은 기초지방정부가 할 수 없는 수사를 비롯한 보충적인 경찰사무만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자치경찰은 궁극적으로 주민의 통제하에 두어야 하고, 주민의 치안역량을 결집하고, 주민의 치안책임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