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민 인하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도심 한복판을 걷고 있는 어느 저녁이었다. 등 뒤에서 확연히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있었다. 순식간에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나를 지나치는 운동복 차림의 무리들이다. 얼핏 보기에도 30~40명 정도는 되어 보인다. 다양한 연령대로 보였는데, 대체로 20~30대로 추정됐다. 당시에는 어떤 성격의 무리인지, 어떤 행위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최근에 유행하는 스마트 폰의 운동애플리케이션 이용자들에게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의 형태이다. 예를 들면, '오늘 저녁 7시, A빌딩, 30분 달리기합니다!'라는 형식의 단체운동을 위한 '번개정보'를 제공받게 되면, 어플 이용자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해 운동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불참에 대한 벌칙도 없고, 중간에 완주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 받지도 않는다.

몇 해 전에 한동안 세간의 주목을 받던 플래쉬 몹(Flash Mob) 행위를 운동에 접목한 형태로 이해가 됐다. 플래쉬 몹은 특정 웹사이트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을 뜻하는 플래시 클라우드(Flash Crowd)와 동일한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집단인 스마트 몹(Smart Mob)의 합성어로 사용된다. 서로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이나 이메일 또는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하여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에 모여 정해진 시간 안에 약속된 행위를 수행하고 제각기 흩어지는 행동을 보이는 형태이다.

대한민국은 법률상으로 정치적 목적 성향의 집단 시위를 제외하고, '예술, 체육, 오락에 관한 집회'는 법적으로 보호 받고 있어서, 이러한 집단 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는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재미있는 부분이 보인다. 말 그대로 스마트 폰 속의 운동애플리케이션은 정해진 시간, 장소, 그리고 행위에 대한 정보만 전달한다. 모든 것은 절대적으로 참여자 본인의 자발적 결정에 따라 진행된다. 정해진 시간, 장소에 가면 똑같은 정보를 받은 참여자들이 모여 있다. 과거의 관습대로라면 참여자들은 기본적으로 이름, 직업, 나이를 묻고, 나아가 어디에 사느냐도 물으며, 신상털기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공통된 부분이 발견되면, 다소 집요하게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려 노력했다. 또한, 운동을 마치면 관계의 지속 및 강화를 위해 피곤하지만 억지로라도 또 다른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곤 했다.

하지만, 이처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정보를 받고 운동을 위해 모인 이 집단에서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운동을 위해 참여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자 전부이다. 과거와 같이 관계를 맺으려는 행위는 오히려 불편한 현실이 된다. '무슨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고, 옷을 입었는지', '누구랑 같이 운동을 하기 위해 나왔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을 한다'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운동을 마치면 "같이 운동해서 즐거웠어요" 정도의 가벼운 눈인사로 마무리하며 각자 홀연히 사라진다. 다소 삭막해 보이긴 해도, 관계의 명료성은 확실하다.

'나나랜드'에 살고 있는 '포미'(For me, 나만을 위해 산다)족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궁극적으로 자기애를 실현하고자 획일화된 규범과 관습으로부터 다소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기를 바란다. 즉 기성세대들이 정의해 놓은 기준들에 맞추려는 것을 벗어나 새 삶의 첫걸음을 뗀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보편적으로 '의미 있는 삶'으로 정의되던 삶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토로한다. 대신, 그동안 누가 봐도 괜찮은 삶을 위해 의심치 않고 따르던 사회적인 통념에 맞춰 사느라 억눌렸던 열정과 즐거움, 숨겨두었던 욕구 등을 표출하기에 다소 편안해진 세상이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오직 나에 의해, 나를 위해 해야 하는 일 중에 대표적인 것이 운동이다. 어느 누구도 '몸이 먼저다'라는 명제에 의문을 가질 순 없다. 디지털 시대도 예외일 수는 없다. 비록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 익숙해져 가지만, 내 몸을 위한 노력은 늘 먼저 있어야 한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뛰던, 바바리를 입고 테니스를 치더라도, 나의 인생을 위한 '나만의 노력'을 투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행한다면, 우리는 그마저도 칭찬하고 응원해야 한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에서 치매환자 역할로 나온 배우의 대사처럼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