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창 인천 부평2동 주민자치위원

1943~1944년에 건축된 아베식당이 사라졌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있었고 상태도 좋은 건물이었는데 안타깝기 그지 없다.
부평구에는 옛 건물이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조병창이 조성되고 하청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사택과 주택, 상가들이 건축됐다. 그러다보니 부평구 관내 건축물들이 오래되었다고 해도 80년 내외이다. 옛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식이 부족하던 시절, 건물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지금은 몇 안 남았다.
내일(22일) 부평구청에서 미쓰비시 줄사택과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미쓰비시 줄사택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평가하고 그 활용방안을 찾겠다고 하니 환영할 일이지만 이 토론회는 의아한 점이 많다. 먼저 발제와 토론자들이 역사학자와 건축가들로만 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미쓰비시 줄사택의 가치와 활용방안을 찾겠다고 한다면 관련 전문가의 의견과 함께 주민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이곳에는 주민센터와 마을회관, 주차장이 들어설 예정인데 주민의 의견을 배제한 채 활용방안을 논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토론이란 양측의 의견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 보존과 개발이라는 상반된 가치 앞에 공정한 토론이 되기 위해서는 같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또 토론회의 주제를 '부평 근대문화유산 토론회'로 확대했어야 했다. 미쓰비시 줄사택에만 매몰되다보니 정작 지켰어야 할 아베식당은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지어진 부영주택은 이제 한 채 남았고 미쓰비시 줄사택 구사택과 2호 두 채는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어 있어 몇 년 후면 사라질 지도 모른다. 부평역 남부역에 있는 철도관사 2채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부평고등학교 앞에 있는 국산자동차 사택과 디젤 사택은 아파트형 주택이 들어선 지 오래다. 부평 군용철도인 제6종합창선은 주민불편을 이유로 폐선하겠다는 것이 구청장 공약사항이다. 그러니 부평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 전반에 대해 토론하고 그 가치와 활용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야말로 부평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줄사택에 한정하지 말고, 해방 이후 부평 미군부대 애스컴과 관련한 역사에까지 확장해야 한다. 부평2동(삼릉)과 부평3동(신촌)은 미군부대와 함께 많은 뮤지션들이 생활했고 클럽이 성행하였으며,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꽃을 피웠던 곳이다. 1973년 애스컴이 해체되고 미군부대가 대다수 떠나자 일자리를 찾아 뮤지션들이 흩어져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지금이라도 뮤지션들과 관련한 내용에까지 확장하면 미쓰비시 줄사택과 관련해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합리적인 방안이 나올 것이다.
2016년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삼릉, 멈춰버린 시간'이라는 주제로 기획전시를 하면서 학술토론회를 진행한 바가 있는데 정비사업으로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이 시점에 이런 토론회를 개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정말 보존할 가치가 있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자랑스러운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흉물스럽고 주민들이 기피하는 곳이라면 주민편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토론자들은 토론만 하고 가면 그만이지만, 주민들은 계속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전문가든, 행정이든, 의회든 주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