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 한국정신분석상담학회장

 

요즘 TV를 틀면 각종 '먹방' 프로그램이 나온다. 때론 피해가기 힘들 정도로 이것도 일종의 공해라면 공해다. 그 포맷도 다양하다. 연예인이 음식점을 소개하거나 유명한 요리사가 맛있는 음식점으로 만들어주거나, 농촌이나 어촌으로 가서 삼시 세끼 해먹는 것만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말 그대로 삼시 세끼 먹을 것을 준비하고 요리해서 먹는 것이다.

문득 다른 사람이 삼시 세끼 먹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본 적이 있나 싶다. 가족의 삼시 세끼도 이렇게 추적해 본 적이 없다. 얼마 전에 보니 해외로 나가 포장마차를 열고 우리나라의 라면, 떡볶이 등을 파는 프로그램도 있다. 심지어 유튜브에서 먹방 방송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 맛있게 먹고 있는 걸 보여주거나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거나 결국은 먹고 마시는 것이다. 식욕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지만 사람들은 왜 이런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런 먹방 프로그램이 다양한 포맷으로 나오는 이유는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것일까. 맛있는 음식 먹고 욕할 사람은 없다. 너무 맛있어서 역설적으로 욕이 나올 수는 있다. 맛있는 음식 먹을 때처럼 사람이 행복할 때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때론 단돈 만 원 정도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 원 이하로 맛볼 수 있다면 더 행복하다. 그런데 이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런 행복감은 단순히 포만감이나 음식의 맛으로만은 설명이 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

맛집 탐방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곧잘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라는 말을 하며 엄지를 척 든다. 최고라는 의미이고 그래서 어찌 보면 그 음식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사람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으면서 감동스럽게 그 말을 할 때 처음에는 최고의 찬사처럼 들렸다. 그런데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같은 말을 계속 하자 갑자기 이게 뭐지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 엄마들이 그렇게 음식을 잘 했나. 우리 엄마들이 맛있는 유명한 식당들의 그 음식 맛을 낸단 말인가.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은 맛을 집에서 봤다면 너의 엄마가 나의 엄마이고 그러면 우리는 한 가족이었나.
왜냐하면 나의 엄마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리고 나의 엄마가 해준 음식도 유일무이하다. 어디 가서도 맛볼 수 없는 맛이다. 그래서 세계 어딜 가든 엄마의 맛을 보기 위해서는 집으로 가야만 한다. 엄마의 음식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다. 가족에 대한 모든 돌봄이 담긴 것이기에 한 수저만 들어도, 냄새만 맡아도 수많은 것들이 밀려온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마들렌이란 과자를 먹으면서 갑자기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를 마시는 순간 나의 몸 속에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달콤한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아주 소중한 본질로 나를 채운 이 황홀함으로 인해 잠시나마 나의 불행한 삶이 별거 아닌 듯 느껴졌고, 일련의 재앙 같은 불행들도 그리 험악하지 않다고 여겨졌으며, 삶의 짧음과 덧없음도 헛된 착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들어와 자리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프루스트는 과자 한 조각을 입에 무는 순간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는 특별한 느낌을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한다. 프루스트가 느낀 그 본질은 바로 나 자신이고 그것은 어머니의 젖가슴까지 내려간다. 정신분석가 클라인은 유아의 첫 대상인 젖가슴이 내사되어 유아의 자아의 핵심을 형성하고 발달의 토대를 이룬다고 했다.
구강기적 욕구가 지배적인 시기에 젖가슴은 양분의 원천이며, 근본적으로 생명, 삶의 원천이다. 어머니의 젖가슴은 영양을 공급하는 물리적 대상만은 아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둘러싸고 욕망과 무의식적 환상을 형성한다.

클라인은 환자들과의 작업에서 어머니의 젖가슴이 모성적 선함, 끝없는 인내심과 관대함 그리고 창조성의 원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맛있는 음식에서 엄마가 해준 맛을 떠올리는 것은 엄마와 관련된 모든 것을 일깨운다. 그 음식은 우리 자신의 심층에서 선함, 따뜻함, 관대함을 일깨우며 우리를 감싼다. 그래서 힘들고 고달픈 요즘 TV 앞에서 우리는 남이 먹는 맛있는 음식을 보며 행복해 한다. 그것은 좋으면서 슬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