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기 인천 계양구선관위 사무국장

최근 광주지역에서 조합원들과 악수하면서 5만원권 돈묶음 50만원씩을 건넨 조합장선거 출마예정자가 구속되고, 조합원 10여명이 자수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문득 법정 스님이 떠올랐다.
행복의 가치를 '무소유'라는 단어 하나로 풀어낸 법정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조합원 1명을 기준으로 50만원이라는 돈의 가치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조합장 후보자에게 50만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에 놓인 조합원이 일부 있을 수 있지만 조합원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후보자로부터 받은 50만원을 모른 체 하고 넘어가는 것은 부패의 사슬에 스스로를 얽어매고 구속하는 것이다. 그 돈이 삶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모르겠지만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과는 역행한 것으로 보인다.

후보자로부터 50만원을 받고 자수한 조합원들의 행복감은 높아질 것이지만 자수하지 않은 조합원들의 마음은 불안하고 초초할 것이며,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나 부패인식지수(CPI)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1위, 국민 1인당 GDP는 세계 28위로 3만달러를 넘어서면서 많은 국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의 행복지수는 57위, 부패인식지수는 45위로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오는 13일 실시되는 제 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금권선거가 되살아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금품수수 행위 제보자에게 최고 3억원의 포상금을 내걸고 있기는 하지만 소수로 구성된 조합의 특성상 신고를 꺼려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위법행위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조합장선거는 '5당 4락'이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5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4억원을 쓰면 떨어질 정도이며 당선되고 나면 그 돈에 버금가는 권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조합장이 매력적인 최고경영자(CEO)여서 경쟁이 치열하다는 주장도 들린다.

최근 공직선거에선 2004년 도입된 50배 과태료 제도 등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금권선거가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행위를 본격 단속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년 전의 일이다.
1987년 민주화 분위기 속에 헌법 개정에 따라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됐다. 그해 12월 실시된 제 13대 대선과 이듬해인 1988년 4월 제 13대 국선은 선거 과열로 불법선거가 활개를 쳤다. 그러나 단속활동은 미미했다.
당시 선관위는 단속 권한이 없고 인력과 장비도 부족했다. 하지만 1989년 4월 실시된 동해시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짓밟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며, 당랑거철(螳螂拒轍)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공명선거 실현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단속 의지를 천명하고 후보자와 선거사무장 모두를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던 것이다.
이후 선관위의 단속 권한이 점차 확대되고 유권자 의식이 개선되면서 30년의 짧은 세월 속에서도 공명선거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제라도 조합원 모두가 솔선수범하여 부정선거를 척결하고 금품수수 같은 선거부정이 있다면 신고하고 자수해야 한다. 더불어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듯이 후보자도 금권선거의 유혹에서 벗어나 조합의 미래를 밝혀줄 올바른 정책과 공약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정책선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번 3·13 선거엔 전국 1343개 농·수·축협에서 약 268만명의 조합원이 참여할 예정이다. 조합원 수가 평균 2000명 정도로 소규모이다보니 기부행위에 따라 받은 금액의 10~50배, 최고 3000만원의 과태료 부과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권선거에 대한 유혹은 여전한 것 같다.

과거 어느 기업이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란 슬로건을 내걸었던 것처럼 조합장선거에서도 '금권선거는 사라졌다고 할 때까지'란 목표를 정하고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