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초대석] '퇴임의 문' 앞에 선 서규환 인하대 교수
[금요초대석] '퇴임의 문' 앞에 선 서규환 인하대 교수
  • 김칭우
  • 승인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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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담긴 미래, 천천히 꼭꼭 씹어 사유하라"
▲ 국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계보를 잇는 비판이론가로 꼽히는 서규환 인하대 교수가 2월 퇴임한다. 한독정치학회 초대 회장 등을 거친 그는 인하대에서 28년간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퇴임 후 인천에서 독서와 집필로 인천사랑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사진제공=인하대

 

[피 끓는 청춘 사로잡은 사상]
시위로 휴강이 일상이던 시절

책읽으며 '비판이론' 윤곽 갖춰
독일 유학 마치고 인천에 정착

[한국사회 위기는 대학으로부터]
논문 쓰느라 연구못하는 교수
점수만 좇는 학생과 대학당국
진정한 공부의 의미 찾아가야


국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계보를 잇는 비판이론가로 이 시대 사표로 불렸던 인하대 서규환 교수가 2월 퇴임한다. 한독정치학회 초대 회장과 나라정책위원회 문화발전위원회 초대위원장 등을 역임했던 그는 인하대학교에서 28년간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다. 인하대와 인연을 맺은 직후 인천에 정착했고, 퇴임 후에는 인천에서 독서와 집필에 나서겠다는 서 교수를 만났다.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서규환

1973년 성균관대에 입학한 서 교수는 필연적으로 1972년 10월 유신체제와 맞닿는다. 시위로 휴강이 일상이던 시절, 피 끓는 청춘을 청계천 폐수처리장 근처에서 야학선생으로, 시위로 보냈다. 명륜동과 혜화동, 명동에서 책 읽기와 대화하고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벗들과 대학 4년의 시간들을 보냈다.

당시 대학가를 휩쓴 에리히 프롬(Erich Fromm·1900~1980)의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비롯한 그의 모든 저술을 읽었고, 관심은 마르쿠제(Herbert Marcuse·1892~1979)을 거치며 비판이론의 사상적 깊이를 쌓게 된다. 이를 계기로 프랑크푸르트학파라는 이름과 사상적 윤곽을 갖춘 뒤 독일 유학이라는 삶의 방향타를 설정하게 된다.

대학 2학년 시절 남산의 괴테하우스에서 독일어를 익혀 명동 소피아서점에 들러 독일어로 된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돼 국내 최초로 하버마스연구논고로 석사학위를 받게 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한 뒤 독일로 건너가 세계 최고 수준의 빌레펠트대학 도서관을 보고 학교를 결정했다.

오페 정치학, 사회학 교수 밑에서 루소, 마르크스 그리고 하버마스에 이르는 사상사를 통해 위기와 비판의 상호관계를, 노동, 언어 그리고 지배의 상호관계를, 총체성 논의를 중심으로 연구한 박사학위논문은 그렇게 완성됐다.

서 교수의 박사논문은 현재 <비판적 위기학의 정치와 정치적 이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돼 정치외교학 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미학과 윤리성, 학제적 연구

서규환 교수는 다양한 논문 외에도 13권의 저술활동을 벌였다. 사회과학 전반, 정치사상과 철학은 물론이고, 정치논평, 위기학, 문학, 미술, 미학, 윤리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적으로 다루며 연구를 이어왔다.

총체성 사유 맥락 가운데 미학교육의 윤리성 문제, 특히 미술을 중심으로 미학이론을 정초하는 연구는 <시각언어의 비판>(전2권)으로 출간됐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핵심적 특징은 총체성 사유에 있으며, 그 가운데 미학이론의 발전이 있다. 특히 아도르노, 벤야민, 마르쿠제가 그러하다. 사유의 중심에 정치개념이 있고, 정치의 본질은 결정이며, 그것은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의 책은 이런 정치개념을 학과의 경계를 넘어 학제적으로 정초하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이다.

그의 최근 저작 <정치적 모랄리아 2: 슈미트와 벤야민 사이, 아감벤>은 <정치적 모랄리아>의 연작인데, 그는 오늘날 정치 없는 윤리도 문제이지만 윤리 없는 정치도 문제라는 화두를 던진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도발적이며 논쟁적인 사상가에 속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1942~)에 대한 매우 포괄적인 연구서로 손꼽히고 있다.

서 교수는 "한국사회가 위기로 불리는 것은 대학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논문쓰느라 연구할 수 없다는 교수, 학점에 매몰된 학생, 논문 갯수와 정부·기업 연구금 실적으로 평가하는 대학당국 등 우리 사회의 민낯이 대학사회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후학들에게 '고전읽기'를 당부한다. 고전은 죽은, 과거의 사상이 아니라 미래의, 살아 있는 사유로 재해석되는 것이기에 고전읽기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고 강조한다.

그는 "건강하려면 섬유질 가득한 음식들을 여러 번 씹어 먹어야 하는 것처럼, 공부란 그렇게 천천히 읽고 독해하며 사유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하대 정석학술도서관 최다대출자이기도 한 그의 수업방식은 '빡빡하고 어려운 수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졸업한 학생들 다수는 그를 시대의 스승으로 꼽고 있다.

▲인천, 인천인

인하대와 인연을 맺기 전까지 서 교수는 인천을 알지 못했다. 인하대와 인연을 맺으며 인천에 정주했고 퇴임 후에도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새얼문화재단의 계간 <황해문화>의 초대 편집주간(1997~1999)을 맡았고 도시의 미학화, 문화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인하대 문화의 거리 조성 등 인천의 도시문화운동을 꾸준히 이어 왔다. 그의 저작물들은 인천을 기반으로 한 <다인아트> 출판사에서 출간한다. 이제는 인천인보다도 인천인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는 "퇴임의 문 앞에서"라는 짧은 단상을 남긴다.

"일요일, 오후, 조용해진 연구실로 홀로 앉아 난해한 책, 탈고하는 시간, 문 앞에서 속삭인다. 이제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창밖을 바라보니 처음 이 공간 속으로 들어왔을 때의 풍경 그대로 소란스러운 이미지들,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저 문을 나서게 되면 이제는 새로움이 올까 … "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



●서규환 교수는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하버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독일 빌레펠트(Bielefeld) 대학교에서 클라우스 오페(Claus Offe) 교수로부터 비판이론을,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교수로부터 역사의미론을, 현상학적 사회학자인 리하르트 그라토프(Richard Grathoff)로부터 현상학을, 만프레드 라우비히(Manfred Laubig)교수로부터 정치철학을 사사했다. 정치학 및 사회학을 전공해 1988년 사회과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내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계보를 잇는 비판이론가로 주목 받았던 서규환 교수는, 한독정치학회 초대회장과 계간 <황해문화> 초대편집주간, 나라정책위원회 문화발전위원회 초대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냈다.


●저서
―1993 <현대성의 정치적 상상력> 민음사
―2008 <박인환:정치적 메타비판으로서의 시세계> 다인아트
―2009 <열린 총체성의 해석과 정치> 다인아트
―2010 <더 많은 민주주의와 비판 시민사회> 다인아트
―2011 <비판적 시대정신> 다인아트
―2011 <비판적 현대성의 정치적 이론> 다인아트
―2012 <비판적 위기학의 정치와 정치적 이론> 다인아트
―2013 <시각언어의 비판, 서양미술작품의 정치의미론1> 다인아트
―2014 <시각언어의 비판, 서양미술작품의 정치 의미론2> 다인아트
―2014 <정치적 비판이론을 위하여> 다인아트
―2016 <한국사회의 정체성 탐색> 다인아트
―2017 <정치적 모랄리아1-레비나스> 다인아트
―2018 <정치적 모랄리아2-벤야민과 슈미트 사이, 아감벤> 다인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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