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발견] 전국 유일 '벼 누룩 술' 명인 김영자
[장인의 발견] 전국 유일 '벼 누룩 술' 명인 김영자
  • 박혜림
  • 승인 2019.0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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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남편 좋은 술 먹이려다 '250년 전통주' 되살렸죠
▲ 김영자 장인이 벼 누룩 술 '맹골향'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교육 수강생들이 벼 누룩 술을 빚는 모습.

 

▲ 밀 누룩을 말리는 모습.

 

 

수원백씨 집안으로 시집와
말로만 듣던 가문酒 연구

제조법 없고 만들기 까다로워
백수현 선생 도움 '맹골향' 개발
한해 찾아오는 사람만 3000명


'날씨가 아무리 춥대도 옷 대신 술을 사 먹는다고 했던가?' 어느 애주가의 술타령이 찬바람이 부는 요즘, 귓전에 맴돈다.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우리 옛 선조들에게 '술'은 빼놓을 수 없는 문화였다. 그 덕에 전국 각지에는 다양한 전통주들이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수원 백씨 가문의 특별한 비법이 담긴 250년 전통주, '벼 누룩 술'의 명인을 양주에서 찾았다. 네 번째 발견, 김영자 장인을 소개한다.

▲집안의 전통을 지역의 문화로

맵싸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여느 전통주의 맛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기존의 밀 누룩으로 만들어낸 전통주와 달리 김영자 장인의 벼 누룩 술은 보다 색다른 맛과 향을 낸다.
"흔히 밀 누룩으로 만든 술의 맛을 지고지순한 맏며느리에 비교한다면 벼 누룩으로 만든 술은 꽃다운 처녀의 앙칼진 모습에 빗대기도 합니다. 그만큼 새콤달콤하면서 깔끔한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벼 누룩으로 빚어 진 술로는 김 장인이 만든 전통주가 유일하다. 그만큼 밀 누룩에 비해 제조 과정이 까다롭고 재료를 다루기 어려워 맥을 이어오지 못한 것에 이유가 있다.
고문헌에 의하면 벼누룩 술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실제 제조 방법에 대해선 어떠한 정보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 장인은 구전으로 내려오던 가문의 전통주라는 사실만을 가지고 오랜 연구 끝에 개발에 성공해내며 지금의 벼 누룩 전통술 '맹골향'을 만들게 됐다.

벼 누룩 술의 역사는 2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 술은 궁중에서 즐겨 마시던 술로 궁중의 잔치인 '진찬'에만 오르던 귀한 술이었다. 이 술이 수원 백씨 가문에 대대로 내려온 전통주가 되기까지 특별한 일화가 전해진다.
궁에서 음식을 만들던 궁녀가 죄를 저질러 쫓겨난 뒤 한 양반가에 찬모로 지내던 중, 성씨가 백가인 자가 양반가에 잔치 날 들렀다 술맛에 반해 찬모를 집안으로 들이게 되면서 이어져 온 전통 깊은 술이라 설명하고 있다.

김 장인 역시 수원 백씨 집안의 며느리로 벼 누룩 술에 대해 익히 들어왔다. 그러나 제조법에 대한 정보는 그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20여년 가까이 술을 빚어 온 그는 사실, 술에 'ㅅ' 자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사람이었다. 애주가였던 남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는 통에 술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당인 남편 덕에 김 장인은 술을 빚게 됐다고 전한다.

"남편이 워낙 술을 좋아해서 걱정이 많이 앞섰죠. 금주를 권유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밖에서 술을 먹기보다 집에서 만든 좋은 술을 먹게 하자는 생각으로 빚게 됐습니다."

▲칠전팔기, 벼 누룩 술 만들기

소싯적, 김 장인은 서울에서 꽤나 이름난 미용사였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면서 쇠약 해진 체력은 더 이상 일을 하기엔 힘에 부쳤다.
마음 편히 노후를 보낼 요량으로 양주에 내려와 지내던 중 백수현 선생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백수현 선생님은 중요 민속자료 제128호이면서 명성황후의 은신처로 알려진 양주 백수현 가옥의 주인이시기도 하시죠. 명망 짙은 양반 가문의 자제로 학식이 두터운 분 중에 한 분이셨죠. 백 선생님으로부터 이 벼 누룩 술을 전수 받게 됐습니다."

백수현 선생은 어린 시절 모친이 항상 만들어 오던 벼 누룩 술의 맛을 잊지 못해 전국 팔도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어렴풋한 맛의 기억만 가지고 곳곳을 다녀 봤지만 어디에서도 벼 누룩으로 빚은 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던 찰나, 김 장인이 양주로 돌아와 술을 만든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그에게 벼 누룩 술을 만들어 줄 것을 제안했다.

"누차 거절했었어요. 백 선생님이 말씀하신 기억의 단서만 가지고는 똑같이 술을 재현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죠. 부담감 때문인지 자신이 없었어요. 당신께서 벼 누룩 술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일지는 몰라도 가문 대대로 이어져온 명주(名酒)의 명맥을 이어가길 원하셨죠. 남편도 덩달아 거들면서 술을 만들기를 권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백씨가의 며느리라는 사명감만을 가지고 벼 누룩 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벼 누룩 술을 만든다는 것은 예상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다 할 제조법이 없었기에 천상 몸으로 부딪혀 익히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숱하게 빚은 누룩들과 버리기를 일삼는 수 십 가마니의 쌀들, 벼 누룩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수차례 이어졌지만 실패는 계속됐다. 옆에서 적극 권유하던 남편마저도 백기를 든 상태였다.

도리어 오기가 발동한 김 장인은 집념 하나로 더욱 연구에 매진하게 됐다. 전국 내로라하는 전통주 명인들을 찾아가 방법을 묻기도 했지만 역시나 몸소 터득하는 방법 말고는 해답이 없었다. 시행착오 겪기를 수해 째, 결국 김영자 장인의 손끝에서 백씨 가문의 250년 전통 벼 누룩 술 제조에 성공했다.

"백 선생님께서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우리 어머니가 담가 주시던 술맛이 난다고 하셨죠.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남편 역시 손님들이 오면 이 술부터 내놓으라며 아우성입니다."
고생 끝에 만들어진 김 장인의 벼 누룩 술은 마을 지명을 따와 '맹골향'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는 양주시의 대표 전통주로 '맹골향'이 알려지면서 이를 맛보기 위해 전국 각지 애주가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김 장인과 양주시는 교육 강좌를 열고 벼 누룩 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오고 있는 중이다.

"한해 3000여명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수강생 모집 공고가 뜨는 즉시 마감이 될 정도로 벼 누룩 술의 제조법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번듯한 대학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몸소 터득한 제조 노하우를 가감 없이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몸소 시간을 내주시는 분들인데 하나라도 더 알려 드려야죠. 비법을 나만 간직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벼 누룩 술의 기술력과 맛은 크고 작은 대회에서 그 우수성을 검증받고 있다. 지난해 '제6회 한식의 날 대축제 세계한식요리 경연대회'에 출전한 벼 누룩 술은 금상에 해당되는 식품의약품 안전처장상을 수상하고 2016년 국제적인 요리 대회인 '코리아 푸드 트렌드 페어'에서 발효식초, 벼 누룩, 벼 누룩 술로 우수한 성적을 거둬 종합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 장인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까지 숱한 좌절과 시련을 겪어야 했지만 그에게는 변하지 않는 철칙이 있다. "저는 돈을 벌기 위해 술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내림 전통주의 명맥을 잇겠다는 사명감과 자부심만을 가지고 시작한 일입니다. 술은 정성입니다. 술을 빚을 때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술에 상태로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을 들인다면 오래도록 변치 않는 맛 좋은 우리 술을 만들 수 있습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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