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명예교수

보릿고개가 숙명이었던 나라. 6·25 남침 전쟁으로 회복 불능의 폐허가 되었고 세계 최빈국이었던 비극의 땅이었다. 그런 나라가 20여년 만에 기적의 나라로 우뚝 섰고 세계는 경탄했다. 성공에는 많은 요인이 있지만 결정적인 한 가지가 있었다.
'빵' 문제 해결이 우선인 그 당시의 우리 현실에서 '민주'나 '자유'는 후순위의 과제이었고, 개인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 우선이 당위론적 관점이었다. 따라서 언제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양보·희생하는 것이 절대적인 도덕률(道德律)이요 리더십이었고, 국민 모두가 하나로 뭉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추진된 민주화와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른 개인주의적 성향이 분출되면서 개인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 정치이기주의가 팽배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가 직면하게 된 두 개의 터널이 '죄수들의 딜레마' 상황과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다.

첫째, 이기심의 발로로 상호 불신하고 각자 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찾다보니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다는 것이 '죄수들의 딜레마' 상황이다. 범죄에 연루된 두 명의 용의자를 체포한 후 각기 다른 방에서 검사의 심문을 받게 된다.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검사는 '옵션(option)'을 알려주고 선택케 한다.
① "만약 한 사람은 자백하고 다른 사람이 자백하지 않으면, 자백한 자는 국가에 협력했기 때문에 석방되지만 자백하지 않은 자는 10년형을 선고받는다." ② "만약 두 사람 모두 자백한다면, 두 사람은 5년형을 받게 된다." ③ "두 사람 모두 끝까지 자백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 모두 다소 가벼운 죄목으로 1년형을 선고받는다"고 알려 준다.

이런 상황이 주어지면, 용의자들은 두 가지 생각의 유혹을 받게 된다. 하나는 상대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자기만 자백하면 석방될 수 있다는 이기적 유혹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자백하고 싶은 욕구에 흔들린다. 다른 하나는 내가 입을 다물더라도 상대가 자백하면 자신만 10년형을 받게 된다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감과 피해의식이다. 결국 두 사람이 협동했으면, 1년형으로 끝날 것을 5년씩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을 맞게 된다.

둘째, 자기 세계, 자기 생각, 자기 시장에만 집착하다가 새로운 외부 쇼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연 도태(멸종)하는 것을 '갈라파고스화의 비극'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역시 이에서 자유롭지 않다.
1990년대 세계 선두를 질주하던 일본의 전자, 정보기술(IT) 산업이 내수시장에만 주력하다가 세계 시장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급기야 내수시장마저 붕괴되는 현상을 니츠노 타케시(夏野剛)교수는 '갈라파고스화의 비극'이라고 했다. 그후 동양권의 경제학계에서 '글로벌 경쟁력 상실' '부정적인 상황(도태)'을 지칭할 때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란 말을 자주 쓴다.

정치·경제·안보 등 전 분야에서 한·미 관계가 돈독할 때는 중국·일본·북한 등 모든 나라가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최근 한·미 관계가 파열음을 내자 일본까지 군사적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UN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제재 강화인데, 우리의 외교행보는 정치적 갈라파고스화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문제는 선진 외국의 석학들과 전문 관료들의 객관적 충고를 무시했다는 게 실수다. 즉 2001년도에 대통령에게 제출한 엘빈 토플러의 '위기를 넘어: 21세기 한국의 버전'과 2004년도 노벨상 수상자인 로렌스 클라인 교수, 도널드 존스턴 OECD사무총장, 심각한 노사문제를 해결한 밥 호크 전 호주 총리의 충고와 조언이 대표적인 것 들이다.

경제성장을 위해서 '예측 가능한 노사관계' '노사간 투쟁이란 말이 사라진 노동시장의 유연성, 그를 위한 강력한 규제개혁' '미국의 성장 배경에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영국·독일·프랑스의 핵심정책은 노동개혁'이라고 했었다.
노동자의 직접적 임금 상승은 물가고와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강성 노조운동을 부르게 되며, 결국 경제발전과 외국인 투자의 걸림돌이 된다는 취지였다.
지금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 사획가 요구하는 인재를 최고로 키울 수 있는 교육혁신이 절실하다. 다른 논리가 이 원칙에 앞설 수 없다는 것을 정치인이나 교육책임자들이 재 인식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