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1호 '당당한 홀로서기' 꿈 이뤄
문화센터 글쓰기 강좌 수강 계기로 글 써
30대에 겪은 직장암, 병상일기 같이 엮어내
"늦었다 할 때가 가장 빠를때 … 지금 도전을"
▲ 김명자 할머니가 활짝 웃어보이고 있다.

 

▲ jtbc 뉴스룸에 보도된 김명자 할머니 /사진=jtbc 뉴스룸 캡쳐본

 

▲ 김명자 할머니가 본인이 그린 미술 작품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명자 할머니

 

"죽일 테면 빨리 죽여 난 이미 백 살이야.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주인공 알란이 외친 대사다.

영화 속 알란이 그랬듯,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돌연 '독립'을 선언한 노인이 있다.

장성한 자녀들의 보살핌을 뒤로한 채 당당히 '자유'를 찾아 떠난 노인, 김명자(76) 할머니의 위풍당당 '독립' 인생 스토리가 지금 시작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으니 이제라도 나 혼자 살아보리라. 100세 시대. 노후를 좀 더 가치 있게 보내고 싶다면 이런 모험을 해볼 만하다.

나도 독립 전에는 한순간도 내가 이렇게 살리라곤 상상 못 했다. 독립선언을 한 이상 최선을 다해 과거보다 더 밝고 폼나는 할머니가 되어보리라. 나만의 즐거움에 내 마지막 정열을 쏟아보리라.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 버킷리스트 제1호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할머니 독립만세 中에서)


# 2014년 10월18일, 김명자 독립기념일

5년전, 아들 내외와 토끼 같은 손주들이 뛰노는 평온한 울타리 속 삶을 뒤로한 채, 일흔을 넘긴 나이의 김명자 할머니는 돌연 독립을 선언한다.

평소 책 읽기를 즐겨하던 김 할머니는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책을 접한 뒤,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과 고민이 들었다. 도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요양원 생활을 전전하던 100세 노인이 어느 날 일확천금이 들어 있는 트렁크 가방을 떠안게 되면서 자유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0세 노인이 자신의 죽음만을 기다리기보다 삶에 대한 희망과 꿈을 꾸는 모습에 감명받았습니다. 나는 이제 고작 70세가 넘었고, 나란들 못할 것이 뭐가 있겠나 싶었죠. 또 나로 인해 본인의 시간을 쏟아야 했던 우리 착한 며느리에게도 자유라는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김 할머니는 결심이 선 날 이후 독립을 하기 위한 계획들을 차차 꾸려나갔다.

일평생 혼자 지내본 적이 없던 그에게 독립은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들 내외의 반대가 심했어요. 저 역시 아들 뒷바라지받으며 편히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망설였지만 한 평생 부모님 밑에 자식으로 살아오고 결혼해서는 시부모의 며느리로, 남편의 아내로, 이제는 자식에 얹혀 살아온 지난 시절까지 억압과 속박에서 벗어나 당당한 홀로서기를 꿈꾸게 됐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산 지난날 보다 내 이름 석 자로 사는 지금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 (할머니 독립만세 中에서)


파주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혼자 살기 딱 좋은 집 하나를 구하고 본격적인 독립을 시작한 김 할머니는 처음으로 누리게 된 '자유'가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예쁜 색으로 도배도 하고, 밤 새 불을 켜놓아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다. 밥이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고, 가끔은 진수성찬을 차려 나 스스로 대접하는 시간도 가졌다.
"아들은 처음 이사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1년도 못 버티고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이 들었는지 신접살림들을 보태주지 않았죠. 하지만 이불 한 채와 달랑 옷가지 몇개만 있던 살림살이들은 하나 둘 늘어나 이제는 제법 사람 사는 곳 같습니다. 이걸 본 아들이 놀라워하더라고요. 엄마가 괜한 소리를 한 것이 아니구나 하면서요. 어느덧 독립한지 5년째가 돼 가네요."

'그냥 돌아가시면 3일을 못 넘깁니다. 이런 형편에 입원이라니 합당치 않았지만 의사의 단호함에 일단 몸에 지닌 패물을 모두 팔았다. 아플 땐 그냥 견디고 참으면 살아진다고 하지만 그러기엔 통증의 크기가 너무 컸다. 주민등록증도 직계가족도 보증인도 없이 나 스스로 사인했다. 입원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할머니 독립만세 中에서)

# 주님, 하느님, 부처님, 아버지 모두 원망스럽습니다.

김 할머니가 39살 되던 무렵,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당장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 죽을날에 대한 두려움보다 당장의 수술비가 걱정이었다.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상처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계모가 있는 친정 집, 갈등이 깊어진 남편, 어디에도 손을 벌리기 어려웠던 김 할머니는 그저 시간이 알아서 지나가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큰돈이 들어갈 병이란 걸 짐작했겠죠. 당시 약사였던 남편은 전조 증상을 보였던 제 모습을 보고도 병원 가보란 소리 한번 한적 없는 이였죠.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단 한번 찾아와 주질 않았어요. 병원비는커녕 위로의 말 한마디 들을 수 없었죠. 불화는 깊어졌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됐죠. 암 선고를 받고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했어요. 병원을 나가면 죽는다 하고 수술을 받을 형편도 아니고 그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병상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신도 그를 가엾게 여긴 탓일까? 가까스로 친오빠의 도움을 얻어 무사히 수술을 마친 김 할머니는 새 삶을 살아가게 됐다. 제2막 인생의 문이 이때부터 열린 것이다.

'산을 오를 때 꼭대기를 쳐다보면 겁부터 나고 못 오를 것 같지만 앞만 보고 한발 한발 떼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주어진 인생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그냥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뎌보자. 오늘 하루만 살아보자. 딱 오늘 하루만…'(할머니 독립만세 中에서)

# 나의 두 번째 삶
<할머니 독립만세>는 그의 '홀로서기' 일화들과 시한부 판정을 받고 병마와 다투던 병상일기를 한데 엮어 도서로 출간한 김명자 할머니의 첫 자서전이다.
아들 내외로부터 첫 독립 후 적적해진 김 할머니는 인근 문화센터를 찾아 글쓰기 강좌를 듣게 된 것을 계기로 글을 쓰게 됐다.

"어렸을 적 방과 후 친구들과 어울릴 틈도 없이 할아버지 심부름으로 신문을 배달했던 것이 글쓰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결정적 계기였죠. 신문을 읽으면서 나도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내 보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꿈을 이루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콩쥐가 꽃신을 신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요?"

버킷리스트 1순위였던 '내 이름으로 된 책 출판하기'에 성공한 김 할머니는 또다시 버킷리스트를 써 내려가고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노인들에게 김 할머니가 용기의 말을 전했다.

"늦었다 할 때가 가장 빠를 때입니다. 이 나이에 뭘 하겠나라는 생각을 버리고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도서관이던 문화센터든 배울 기회가 많다. 주저 말고 지금 당장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