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 목숨도 걱정했던 실학의 거두
▲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초상. 박지원의 손자인 박주수(朴珠壽) 그림.(경기문화재단 소장)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우리는 살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 질문은 대부분 사회와 학교가 정한 것을 복습하는 일일 뿐이다. 선택지는 옳다, 그르다 둘 중 하나거나 많아야 5개에 지나지 않는다. 부자냐 가난하냐? 맞느냐 틀리냐? 잘 사느냐 못 사느냐? 성공이냐 실패냐?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질문에 답하는 공부를 학문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질문이 옳은지 그른지' 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존엄한 인간으로서 정중한 대접을 받는가? 내 삶은 도덕적이며 정의로운가? 이 사회와 세계를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답을 18세기, 이 땅에 '실학'이란 두 글자를 새겨 넣은 이들에게서 찾아본다. 이들 글을 잘만 독해하면, 이 시절 우리들의 지남(指南)을 얻을 수 있어서다.

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어 두고 연암의 초상(肖像)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말문을 열어 보겠다.

연암의 둘째 아들 박종채(朴宗采)가 지은 <과정록(過庭錄)>에 의거하여 살펴 본 연암의 생김은 이러하다.

'아버지의 얼굴빛은 아주 불그레하며 활기가 도셨고 눈자위는 쌍꺼풀이 지셨으며 귀는 크고 희셨다. 광대뼈는 귀밑까지 이어졌고 기름한 얼굴에 수염이 듬성듬성하셨으며 이마 위에는 주름이 있는데 마치 달을 치어다 볼 때 그러한 것 같았다. 키가 커 훤칠하셨으며 어깨와 등은 곧추섰고 정신과 풍채는 활달하셨다.'

아들이 쓴 것이기는 하지만, 연암의 인물됨이 여간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나 연암의 바깥모습이니 이것만으로 연암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연암은 매우 여린 심성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녔기에 불의를 보면 몸을 파르르 떠는 의협인(義俠人)이자 경골한(硬骨漢)이었다.

그의 성격에 관한 글을 찾아보면 연암은 상대에 따라 극단으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위선자들에게는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대는 단연함을 보이다가도 가난하고 억눌린 자, 심지어는 미물에게까지 목숨붙이면 모두에게 정을 담뿍 담아 대하였다. 모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 낙차가 여간 아니란 점에서 연암의 심성을 읽는다.

이런 연암이 '개를 키우지 마라'고 하였다. 왜 그랬을까?

위대한 개들의 이야기는 즐비하다. 개에 대한 속담도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심심파적으로 세어보니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큰사전>에는 어림잡아 52개나 된다. 대부분 상대의 허물을 꾸짖는 비유로 등장한다. 그만큼 우리와 삶을 같이하는 동물이라는 반증이다. 그 중, '개 같은 놈'이니,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욕이 있다. 앞 것은 그래도 괜찮은 데, 뒷 욕을 듣는다면 정말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하는 말이지만, 후자 쪽의 욕을 잡수실 분이 이 세상엔 꽤 된다. 사람 사는 세상, 그야말로 '개가 웃을 일이다.'

'개를 키우지 마라'는 연암의 성정(性情)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결절(結節)이다. 연암은 '개를 기르지 마라(不許畜狗)'하였다. 그 이유는 이렇다.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또 개를 기른다면 죽이지 않을 수 없고 죽인다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것만 못하다.

말눈치로 보아 '정(情 )떼기 어려우니 아예 기르지 마라'는 소리이다. 어전(語典)에 '애완견(愛玩犬)', 혹은 '반려동물(伴侶動物)'이라는 명사가 없을 때다. 계층이 지배하는 조선 후기, 양반이 아니면 '사람'이기조차 죄스럽던 때였다. 누가 저 견공(犬公)들에게 곁을 주었겠는가.

언젠가부터 내 관심의 그물을 묵직하니 잡고 있는 연암의 메타포이다. 연암의 삶 자체가 문학사요, 사상사가 된 지금, 뜬금없는 소리인지 모르나 나는 이것이 그의 삶의 동선(動線)이라고 생각한다. 억압과 모순의 시대에 학문이라는 허울에 기식(寄食)한 수많은 지식상(知識商) 중, 정녕 몇 사람이 저 개(犬)와 정(情)을 농(弄)하였는가?

이미 머리말에도 썼거니와 나는 연암을 켜켜이 재어놓은 언어들 중, 이 말을 연암의 속살로 어림잡고 그의 실학적 세계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