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식솔들을 한 짐 가득 등에 지고
아버진 이 안개를 어떻게 건너셨어요?
닿는 순간 모든 것을 녹아내리게 하는
이 굴젖 같은 막막함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부푼 개의 혀들이 소리 없이 컹컹거려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발 앞을
위태로이 달려가는 두 살배기는
무섭니? 하면 아니 안 무서워요 하는데요
아버지 난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바람 속에서는 바다와 별과 나무,
당신의 냄새가 묻어 와요
이 안개 너머에는 당신 등허리처럼 넓은
등나무 한 그루 들보처럼 서 있는 거지요?
깜박깜박 젖은 잠에서 깨어나면
어느덧 안개와 한 몸 되어 백내장이 된
우우 당신의 따뜻한 눈이 보여요
덜커덩 덜컹 화물열차가 지나가요
그곳엔 당신의 등꽃 푸르게 피어 있는 거지요?
나무가 있으니 길도 있는 거지요?
무섭니? 물어주시면
아니 안 무서워요! 큰 소리로 대답할게요
이 안개 속엔 아직 이름도 모른 채 심어논
내 어린나무 한 그루가 짠하게 자라는걸요!
나무는 언제나 나무인걸요!


자욱하게 안개가 내려 세상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지워질 때도 아버지는 '굴젖 같은 막막함'을 견디며 느티나무처럼 버티고 계신다. 하늘과 땅의 의미에 닿은 나무의 상징성이 그러하듯이 아버지의 존재란 언제나 하늘로 향한 정신의 지향성과 대지의 넉넉한 포용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존재다. 비바람이 불고 천둥이 쳐도, 눈보라가 치고 혹독한 겨울이 닥쳐도 그때마다 시련과 맞서는 당신의 허리는 꼿꼿하고 가슴은 따뜻했다. 나도 세상에 나아가서 자식을 기르고 아버지가 되어있지만 때때로 세상의 풍랑을 만나면 막막해져서 '당신의 냄새가' 그리워지고 '당신의 따뜻한 눈'이 등꽃처럼 푸르게 피어서 내 등 뒤에서 내가 안 무섭다고 큰 소리로 말할 때까지 아버지, 가만가만 내 불안을 다독거려 주셨다. 다시 새해 새날이 시작되고 物物이 새롭고 人人이 귀한 아침이다. 사람 사람마다 모두가 다 화창이고 인연마다 다 소중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나날이었으면 좋겠다.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