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명예교수

 

무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 경우도 처음인 것 같다. 더욱이 '탈원전 청구서가 쌓여간다', 33조 쏟으면서도 '일자리 목표' 절반 낮췄다, '벼랑 끝에 선 기업들, 신년 계획조차 못잡는다', '대한민국은 세금 공화국', '21세기 과제'와 거꾸로 가는 한국, '2018년, 자유민주주의가 저물다', '혐오사회와 표현의 자유' 등 지난해 여러 매체에 등장한 글을 읽다보면 오금이 저리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을 배우자'며 특집기획기사를 보도하고 고전하던 일본이 '아베노믹스 5년'만에 역대 최고 순익으로 90년대 초호황 기록을 깼다는 보도는 또 다른 쇼크다. 아베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재기를 위해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교수로부터 5년 동안 경제정책을 공부했다. 2012년 다시 총리가 되자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돈을 풀겠다"고 선언했다. 지도자가 돈 풀어 기업들을 적극 후원하고 기업은 구조조정하면서 획기적인 결과를 낳았다.

중국은 정치적 안정과 지도자가 일관된 산업정책을 펼쳐 4차 산업혁명의 경쟁력도 선두 자리에 근접해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어떤가. "CEO들 국감 증인 채택으로 기업 경쟁력 타격받고", 재계는 "한국만 법인세 역주행... 답답하다"고 탄식했으며, "자유경제 흔들면 재앙"이라며 경제단체들이 반발했지만 허사였다.
이같은 현실에 주목할 때, 유명한 고전과 옛 명사들의 말에서 재음미해 볼 것은 없을까? 그래서 떠오른 것이 에밀 졸라, 폴 랭그랑, 토마스 만, 메릴 플로드, 멜빈 드레셔, 그리고 앨버트 티커 교수 등이다.
에밀 졸라는 그의 소설 '인간 짐승'에서 현대(그 시대)를 기관사와 화부가 없는 기관차로 표현하고, 현대인을 기차 승객, 즉 술 취해 군가를 부르며 눈앞에 닥칠 큰 재앙을 모르는 군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관사 자크와 화부 패쾌가 싸우다 뒤엉켜 철로에 떨어져 죽는다. 친한 자기들끼리 싸우다 자멸한다. 달리는 기차에는 전쟁터로 가는 군인(현대인)들이 잔뜩 타고 있는데, 이들은 술에 취해 목청껏 노래를 부를 뿐 잠시 후에 닥칠 종말(비극)을 생각조차 못한다. 모두 다 자기 욕망과 감정에 휘둘려서 본분을 망각하고 제 정신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 내면의 동물적 요소인 충동, 본능, 욕구, 증오심의 노예가 성폭행, 불륜, 살인을 한다. 사건은 집권층의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흐지부지되거나, 판사는 등장인물 중 가장 순진한 카뷔슈에게 종신형을 선고한다. 오직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진실은 은폐되고, 법정마저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등장인물 모두 인간 짐승들이다. 에밀 졸라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어디를 향해 가는가?'라고. 우리 현실에서 무언가 생각게 하는 소설이다.

한편 폴 랭그랑은 산업사회의 정신적 상황을 감옥에 비유하여 현대인을 '수감자'라고 했다.
그간 비뚤어진 교육관(교과 위주, 학력 위주, 입시 위주, 정형화된 문제 풀이의 반복)으로 청소년들은 '입시 지옥'이라는 감옥, 출세 열망과 기복사상의 연장에 불과한 열풍을 '교육열'로 착각, 나라 전체가 '과외 열풍'에 빠져 학교의 학원화, 학원의 학교화라는 현상은 또 다른 '학벌주의 감옥'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토마스 만은 현대 문명을 '결핵 요양소'로 비유했는데, 현대인은 그 결핵요양소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로서 모두 우울증과 신경 쇠약에 걸려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결국 현대인은 신체적으로 무서운 질병인 결핵에 감염되었고, 정신건강상 문제도 있기 때문에 모두 치료를 요한다는 말이 되겠다.
끝으로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을 생각할 때, 플로드와 드레셔, 티커 교수 등이 주장한 '죄수의 딜레마'상황이 연상된다. 즉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모두 눈앞의 자기 이익과 고집(왜곡된 사고와 편견)만 챙기려다 같이 공멸(침몰)하게 된다는 최악의 상황 말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느낀 것도 이미 3년 전의 일이다. 독일은 하르츠 개혁을 통해 정권이 바뀌고 누가 집권해도 경제·사회 개혁은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타협했다. 일본은 경제를 중시하는 아베 총리가 멘토인 하마다 교수의 조언대로 '아베노믹스'의 대결단을 통해 20년 장기 침체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했다. '5개 암초'를 걱정해야 하는 'J노믹스'의 우리 현실에서는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