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같은 성 인권교육 수준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현직 중학교 교사의 절망적인 고백이다. 지난 주 경기도교육연구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이런 낙담을 뒷받침할 만한 수준의 증언과 통계들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도내 초중고 학생 10명 중 4명은 성 인권 피해를 경험했고, 그중 절반 이상(55%)이 피해를 경험하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그냥 넘어갔으며, 그 이유로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53.2%)'라는 답변을 내놨다. 교직원 16%도 같은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상당 수의 학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39.8%)'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학생 대다수는 성 인권 고충처리 창구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70%)고 한다. 일반 직장에서조차 성 인권교육을 의무화 한지 오래다. 더구나 학교에서 성교육이 보편화된 건 이보다도 훨씬 오래된 일이어서 이처럼 무지한 결과가 나오리란 예상은 하기 힘든 결과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전문가들의 진단이 더 충격적이다. 우선 천편일률적으로 시행하는 집체교육과 매년 유사한 내용을 반복하는 교육내용, 여기에다 성 인권교육을 주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 일반 교사들에게는 수업 권한이 없고, 구체적인 표준안이 없다는 점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로 지적했다. 믿기 힘든 일이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시작한 게 벌써 20년전 일이다. 한 때는 제법 요란하기도 했고, 미투 운동 등 여러 차례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고비를 겪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교육을 관장하는 컨트롤타워가 없고 교육방식과 내용 등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다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이라면 지금이라도 이런 실태조사 결과를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고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다음의 문제는 교육당국이 책임져야 한다. 당국은 연구단체들과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적극 청취하고 이처럼 암담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기 바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정도의 다부진 각오와 문제의식이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