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주시초 2
장진(長津) 땅이 지붕넘에 넘석하는 거리다
자구나무 같은 것도 있다
기장감주에 기장차떡이 흔한데다
이 거리에 산골사람이 노루새끼를 다리고 왔다
산골사람은 막베등거리 막베잠방등에를 입고
노루새끼를 닮었다
노루새끼 등을 쓸며
터 앞에 당콩순을 다 먹었다 하고
서른닷냥 값을 부른다
노루새끼는 다문다문 흰점이 배기고
배안의 털을 너슬너슬 벗고
산골사람을 닮았다
산골사람의 손을 핥으며
약자에 쓴다는 흥정소리를 듣는 듯이
새까만 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한다


날이 갈수록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하- 시름이 많은 시절이다. 어느 듯 가을도 깊어서 나무도 산짐승도 하늘도 다 겨울에 들고 목소리의 울림도 차서 유리창처럼 냉기가 서렸다. 오늘은 백석 시인의 시 <노루 -함주시초 2>를 내어 놓는다. "장진(長津) 땅이 지붕넘에 넘석하는 거리"는 아니라도 오늘도 거리에는 여전히 차들이 다니고 드문드문 사람들이 다니고 채 떨어지지 않고 남은 나뭇잎들이 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나풀거리고 하늘이 흐려서 낮게 내려앉은 아침이다. "노루새끼는 다문다문 흰점이 배기고 배안의 털을 너슬너슬 벗고" 새까만 눈을 하고 "약자에 쓴다는 흥정소리를 듣는 듯이" "서른닷냥" 값에 팔려간다는 사실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마음으로 여전히 노루는 산골사람의 손을 핥고 있다. 용서와 관용이 이 경지라면 이미 무주(無住)의 세계다.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아서 사람과 사람사이도 가랑가랑 숨소리가 넘석하는 듯이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