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년 전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과 거리는 촛불로 넘쳤다. 거의 20차례나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갖가지 요구를 외쳤다. 이에 대응하여 대규모의 태극기집회가 20여 차례에 걸쳐 "박근혜 탄핵 반대"를 외치며 맞불을 놓았다.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인 집회를 유지하며 우리 국민의 성숙한 정치의식을 보여주었다.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다.
촛불집회는 2016년 12월8일 국회가 의원정수 300명에 299명이 출석하여 234명의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헌법재판소가 2017년 3월10일 만장일치로 탄핵소추를 인용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을 하는 데에도 촛불집회는 사실상 영향을 미쳤다. 2017년 5월9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어 곧 바로 취임하였다. 촛불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국민들도 요구하였다.
촛불집회 2주년을 맞이하며 무엇이 촛불정신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촛불집회가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 것이 목적이었다면 촛불집회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촛불집회는 박 대통령 퇴진을 반대한 태극기 집회와 동격으로 추락하고 만다. 촛불집회 의미를 이렇게 축소하고 왜곡시켜도 되는 것일까?

촛불집회에는 2300여개 단체가 참여했지만, 참여한 사람들은 이들 단체가 동원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무능하고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하에서 축적된 분노를 안고 수십만, 수백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과 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어린 학생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이념도 초월하여 촛불집회에 참여하였다. 요구사항도 매우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를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으로 보는 것은 촛불집회 의미를 축소하고, 폄하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나온 여러 요구사항 중에서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가 가장 함축적이다. 국민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 부패한 국가, 갈등을 증폭시키는 국가에 대한 분노와 절망의 표현이다.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퇴진을 넘어 박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낡은 체제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구체제, 즉 87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의 국가를 요구한 것이다. 그래야 촛불집회는 비로소 혁명의 성격을 가질 수 있으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반대했던 태극기집회를 포용하여 '10월혁명'으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요구를 가지고 혁명에 참여했지만 수많은 혁명가와 이론가들이 치열한 논쟁을 통하여 혁명정신을 만들어 내고, 1793년의 혁명헌법을 통하여 구체제를 청산했다. 헌법개정은 혁명의 전리품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헌법으로 혁명은 비로소 완성된다. 촛불집회는 그 정신에 대한 담론도 취약하고 체제의 전환을 위한 헌법개정도 달성하지 못하였다. 이 점에서 촛불집회는 실패한 혁명이거나 아직 끝나지 않은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촛불집회 2주년을 맞이하며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고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국민적 담론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촛불집회를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최대 수혜자다. 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국가의 무능과 부패, 권력남용과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 87체제로 상징되는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기반을 구축하여야 한다.
만약 체제전환을 위한 헌법개정을 하지 않거나 못 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87체제 시즌 2'로 전락할 것이다. 87체제 하에서 모든 대통령은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초라하게 퇴장하였다. 국민들은 내내 불행하였다.
새로운 헌법을 정치권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 새로운 헌법을 쟁취하기 위해 국민이 나서야 한다. 청나라 초기 대유학자인 고염무는 "천하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고 했다. 촛불도 태극기도 '10월 혁명'의 완성을 위해 이제는 함께 타오르고 휘날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