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응 조치 시 영변 핵시설 폐기"
트럼프, 공동선언 "흥미롭다" 평가
북미 협상 진전이 군축·경협 '열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반도 비핵화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남북정상 간의 이번 회담 결과가 어떤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전날 2시간 가량에 걸친 1차 회담에 이어 이날 오전 10시부터 2차 회담을 이어갔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직접 찾아와 열린 이날 회담은 배석자를 두지 않고 두 정상이 오전 11시10분까지 70분간 독대를 했다.

회담에서는 3대 의제로 꼽히는 비핵화·군사긴장 및 전쟁위협 종식·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두 정상의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정상은 회담을 마친 뒤 '9월 평양공동선언' 합의서에 서명하고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을 열어 남북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선언문에 담긴 한반도 비핵화 추진 의지

두 정상은 선언문에 비핵화 의지를 담았다.

선언문에서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은 처음으로 비핵화 방안도 합의했다.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면서 "한반도의 영구 비핵화가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생중계 화면 앞에서 '확약'이라는 단어를 쓰며 비핵화 의지를 거듭 밝혔다는 점은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핵 리스트 신고' 조치 등으로 대변되는 '현재 핵 포기'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합의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영구폐기'를 거론한 동창리 시설의 경우 이미 해체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다 추가조치의 경우 미국의 상응조치가 전제돼 있음으로 기존 북한의 스탠스에서 큰 변화는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핵 시설 폐기가 명문화된 선언문에 적시된 것 자체가 성과인데다, '유관국의 참관'이라는 표현도 한 단계 진일보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트위터에 글을 남겨 "김 위원장이 핵 사찰(Nuclear inspections)을 허용하는데 합의했다"며 "매우 흥미롭다(very exciting)"고 평가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배석자 없는 독대가 70분간 계속된 만큼, 선언문에 담기지 않은 비핵화 관련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특히 평양공동선언 내용 외에도 비핵화에 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협 종식

군사긴장·전쟁위협 종식에 대해서는 두 정상이 공동선언에 합의한 후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별도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남북은 합의서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고,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해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하는 등 구체적 실천방안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수십년 세월 지속돼 온 처절하고 비극적인 대결과 적대의 역사를 끝장내기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며 이번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군사분야에서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지며 일부에서는 남북이 사실상 전쟁 종식을 선언한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다만 일부에서는 남북관계 역시 북미 간 비핵화 협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인 만큼 섣부른 낙관은 삼가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경제협력과 교류 확대

이번 회담에서 남북이 서해와 동해 주변에 각각 공동특구를 조성하자는 경제협력의 큰 그림이 그려졌다.

서쪽은 실물경제를 중심으로 한 경제공동특구를, 동쪽은 관광사업에 주력하는 관광공동특구를 만들자는데 뜻을 같이 한 것이다.

공동특구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10·4 선언'에 제시됐던 개념이다.

당시 선언에는 '경제특구 건설'이라는 표현으로 담겼다.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11년 만에 만난 남북 정상은 올해 4월 '판문점 선언'에서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확인했으며 이번 평양공동선언에서 이를 한층 구체화했다.

서쪽의 경제특구는 1단계 개발에서 멈춘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2단계 개발, 한강 하구와 북한 연안의 항만·어로 사업 등으로 범위를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

동쪽의 관광특구 역시 금강산으로의 육로·수로 관광을 재개하는 데 이어 설악산과의 연결, 그리고 주변 비무장지대(DMZ)와 연계한 생태·안보관광 사업으로의 확장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 같은 경제·관광공동특구 조성은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新)경제지도 구상'과 맞닿아 있다.

'환동해권', '환서해권', 그리고 '중부권' 등 3개 경제벨트로 구성된 신경제지도의 밑그림은 이미 나온 상태다. 환동해권은 에너지·자원 중심이고, 중부권이 환경·관광 중심이라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경제와 관광을 두 축으로 남북 경협을 전개하겠다는 구상에서 일맥상통한다.

물론 경협과 관련된 남북의 합의나 구상이 실현되려면 절대적으로 선결돼야 하는 게 북한의 비핵화라는 데 이견이 없다.

북한 핵무기·미사일 개발에 따른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남북 경협에 대한 모든 논의는 실현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공허한 담론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소식이 발표되면서 '화룡점정'을 이뤘다.

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서울 방문을 요청했고, 김 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안에 방문하기로 했다"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올해 안'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답방이 성사될 경우 남북 정상이 1년 동안 네 차례나 얼굴을 마주하는 셈이 되며, 이는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양 정상의 '정기적 회담과민족 중대사에 대한 수시 논의'가 실현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이런 정기적 만남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여정에서 남북 정상의 신뢰를 한층 두텁게 한다는 점에서 한층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문 대통령의 이번 2박3일 방북 기간 양 정상은 카퍼레이드나 환영만찬 등에서 '우정'과 '신뢰'를 언급하며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고, 이날 기자회견 직후에도 평양 옥류관에서 함께 오찬을 했다.

이런 남북관계 개선은 연내 종전선언이라는 문 대통령의 1차 목표를 앞당기는 데에도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평양공동취재단·서울=홍재경 기자 hjk@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