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숨 가쁘게 달려온 꼬마 기차는 종착역에 사람보다 물건을 더 많이 쏟아냈다. 수원·군자·소래 쪽에서 온 농부들은 직접 키운 닭이나 제철에 거둔 농작물을 역 마당에 풀어놓았다. 동인천역 부근에 더 큰 시장이 있었지만 그곳까지 이고지고 가기는 쉽지 않았다. 값싸고 실한 물건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도회지 사람들이 제 발로 모여들었다. 농부들이 가져 온 참깨, 들깨로 기름을 짜주는 집과 고추를 빻아 파는 점포도 하나둘 생겼다. 자연스럽게 시장통이 형성되었다.
농산물 판 돈으로 농부들은 생필품과 공산품을 사들고 수인선 막차에 몸을 실었다. 한동안 수인선은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물류 열차 역할도 했다.

1979년 수인선의 종착역이 송도역으로 변경되었다. 기찻길이 끊어지면서 더 이상 수원 쪽 농부들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장터가 사라지진 않았다. 곡물가게와 고추집은 신광초교 담벼락에 기대 연백상회, 개풍상회, 충남상회 등 자신의 고향을 가게 간판으로 내걸고 장사를 이어갔다. '수인곡물시장'이란 이름도 얻었다.
90년대 말 이 시장의 전성기는 기름집들이 이끌어 갔다. 이곳에 문을 연 약국에서조차 한 켠에 기계를 들여 놓고 기름을 짤 정도였다. 약 파는 것보다 기름 짜는 게 수지가 맞았다. 흰 가운을 입은 약사는 약을 '조제'하던 손으로 기름을 '제조'했다. 이제 이 이야기는 '전설'로 남아 있을 뿐이다.
곡물점도 기름집도 예전만 못하다. 한 때 80개 이상의 가게가 있었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었다. 햇살 좋은 가을 오후, 눈 어두운 늙은 주인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곡물 훔쳐 먹는 참새 떼만이 부지런을 떨고 있다. 이제는 '시장'이란 이름도 잃어버린 채 수인곡물거리는 도시의 뒷무대로 한발짝 물러나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