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희 필앤컴퍼니 대표


'항서 매직'의 주인공 박항서. 그는 지난해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되자마자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강호인 호주와 이라크를 이기고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4강에 올랐다.

베트남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드는 시작이었다.

올해는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에서도 4강 신화를 이룩하고 준결승에서 한국 대표팀과 맞붙기까지 했다.

이른바 '항서 매직' 열기가 한국과 베트남 양쪽에서 대단하다.

특히 준결승에서 한국을 이기라는 국내 축구팬들의 댓글도 적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도대체 이런 박항서 감독의 성과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베트남 현지 언론들은 "박 감독이 불굴의 투지를 베트남팀에 심어주었으며, 선수들에게는 '파파' 라고 불리는 리더십의 결과"라고 말한다.

필자는 40년 전 고교시절 박항서 감독의 '파파 리더십'을 직접 경험한 추억을 갖고 있다.

필자가 고교 축구선수 시절, 축구명문 한양대와 연습경기를 한 적이 있었다.

경기장에 들어가 보니 풀백을 맡았던 필자가 마크할 선수가 바로 박항서 감독이었다.

그때는 이름이 박항서였는지도 몰랐다.

"네가 막을 선수가 기술도 좋지만 거칠고 근성 있으니까 죽기살기로 막아야 한다"는 감독님 말이 전부였다. 경기장에 들어가니 유난히 키가 작고 얼굴이 무척이나 성깔 있게 생긴 '형님 선수'였다. "오늘은 죽었구나" 하는 심정으로 경기에 임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인기와 근성 등에서 고교 1학년인 필자가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를 때우느라 몸싸움과 태클, 그것도 모자라 육두문자까지 동원하며 방어에 나섰다.

나이도 한참 위인 박항서 선수와 말싸움 신경전도 서슴지 않았다.

경기 막바지에는 시합 끝나고 "맞짱 한번 뜨자"는 얘기를 던지며 감정싸움까지 했다.

경기가 끝날 무렵 정신이 든 필자에게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하늘같은 선배에게 맞짱을 뜨자고 한 철없는 행동을 어떻게 수습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끝나자 박항서 형은 필자에게 다가와 활짝 웃어 주었다. "너 진짜 고 1학년 맞냐"며 경기도 잘했고 투지도 대단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이어 "경기 때는 투지 있게 해야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선배들한테 예의를 지켜야 한다"며 따끔한 충고를 해주었다.

박항서 감독은 그 당시에도 투지가 강하고 근성 있는 선수로 유명했다.

그런 성격 뒤에는 까까머리 천방지축 고교생의 무례함을 넓게 받아들이는 온화함도 있었다.

그 투지와 근성, 너그러움이 40여 년간 숙성돼 '파파 리더십'을 완성한 듯하다.

필자는 생각해 본다.

강하고 근성이 있으면서도 때에 따라선 부드럽고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리더십이 베트남 축구 대표팀에 스며들어 오늘의 베트남 축구팀을 탄생시켰다고. 29일 저녁에 펼쳐진 한국과 베트남의 준결승 경기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 축구팬들은 대한민국은 물론 베트남 대표팀에도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당연히 우리팀을 응원하지만 손흥민·황희찬·이승우 등 해외파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팀을 상대로 싸우는 베트남팀의 매력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항서 감독의 '파파 리더십'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무에서 유를 창조한 베트남팀이지 않은가. 스포츠경기, 특히 국가 대항전 특성상 우리팀이 지면 속 상하지만, 오랜만에 그런 걱정은 덜고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매직 항서' 덕분이다.

/원종희 필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