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역 여성독립운동가 찾아야 하는 까닭
[사설] 지역 여성독립운동가 찾아야 하는 까닭
  • 인천일보
  • 승인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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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일본 침략 진상을 파악하려고 만주 하얼빈에 도착했다. 그리고 조사단은 한 여성에게서 무언가를 전해 받았다. 잘린 손가락 두 마디와 혈서였다. 혈서는 '조선은 독립을 원한다'(朝鮮獨立願)라는 짧은 글이었다. 혈서를 쓴 독립운동가는 남자현 여사. 남 여사는 1919년 46세에 만주로 망명한 뒤 서로군정서에 가입해 항일무장투쟁을 지원했고, 북만주 일대에 10개 여자교육회를 세워 여권신장과 자질향상에 주력했다. 1925년 일본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 계획에 동참했고, 투옥중인 안창호 선생 등 여러 애국지사 옥바라지를 했다. 그이는 1933년 만주국 주재 일본 전권대사를 암살하려다가 체포됐고 단식 투쟁 끝에 순국했다.

이처럼 독립운동에는 남녀가 따로 없었다. 남 여사처럼 목숨을 바쳐 저항한 여성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조사·연구·기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당수 여성이 가족을 돌보며 '항일투쟁 내조'를 해왔다. 대부분 역사 속에 묻혀 잠들어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기록해 후세에 전하는 일이 시급한 까닭이다. 인천에서도 독립운동 의미를 더 넓힌다는 차원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를 조사·발굴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더욱 그렇다는 얘기다.

인천에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야 2008년 시와 시여성단체협의회가 발행한 '역사 속의 인천 여성'이 고작이다. 그나마 일부 운동가의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벌이고도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3·1운동은 지역·성별·신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여러 계층에서 참여해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독립운동 현장에 나가지 않았더라도, 자금마련 등 갖가지 방법으로 동참한 여성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가 '3·1운동과 여성'을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도 이런 의견이 나왔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지역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꼼꼼히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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