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명예교수
1990년대 말 우리 사회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IMF사태를 극복하기도 버거운데 청소년 문제까지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스컴은 청소년들이 직접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서 관련된 학원폭력이 저연령화, 난폭화, 조직화, 성인 범죄화, 보편·흉포화해 가는 것 같은 '불길한 조짐'을 보인다고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급기야 "학원 폭력은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주요 범죄다. 이제 학원 폭력은 더 이상 교내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부가 나서 소탕대책을 밝혔다. 결국 교육권이 아닌 공권력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느낌이었다. 청소년들이 당하는 문제, 청소년들이 느끼는 문제,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문제,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문제들에 대해 접근할 때는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이 정도(正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학원 폭력 가해자들이 범죄자여서 지도나 선도 대상이 아니라 관리· 처벌·소탕의 대상으로 간주한 데 있다.

학원폭력 관련 청소년들을 교육자에게 맡기지 않고 경찰, 보호관찰관, 검사, 교도관에 넘기겠다는 발상이다. 그 당시 필자는 농촌(강화도) 출신인 관계로 농작물과 과수원을 보면서 올바른 청소년 지도 대책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쌀·보리·옥수수 등의 농작물은 모두 그 심은 자리에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과실 나무들은 다르다. 어른 주먹 만한 크기의 배와 사과 속에 든 씨앗을 심는다고 그 자리의 나무에 같은 크기의 과일이 열리지 않는다. 복숭아와 자두 역시 그렇다. 아무리 큰 과실 속의 씨앗을 심어도 그 나무에 열리는 과실은 작고 초라하다. 그래서 큰 과실을 얻기 위해 그 나무에 좋은 과실나무 가지를 다시 접 붙여야 한다.

특히 처음 씨를 심은 과실과 전혀 다른 나무로 태어나는 대표적 식물이 감나무이다. 아무리 큰 감의 씨를 심어도 그 씨앗에서는 고욤나무 싹이 나올 뿐이다. 잎도 다르고 달리는 열매의 모습과 크기는 완전 돌연변이다. 그 고욤나무에 감나무 가지를 접 붙여야 비로소 감나무가 되고 과실인 감을 수확하게 된다. 그래서 '감나무는 줄기와 가지로만 존재하지, 감나무 본래 성질의 뿌리가 없다. 이 세상 모든 감나무의 뿌리가 바로 고욤나무이다'(이순원, 한국일보, 2005. 9.27)라고 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특히 일탈 청소년(고염나무)은 잘라 버릴 것이 아니라 좋은 교육자(감나무 가지)에 의해 패자부활전(접목)을 거쳐 역전승을 거두게 하는 것이 교육적 대책이고 정답이다. 그래서 학교가 필요하고 교육자의 존재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국가 발전의 계주봉(繼走棒:Baton)을 넘겨 줄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거나 처벌(정학, 퇴학)의 카드에 맡겨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역기능적 가정에서 받지 못한 심리·정서적 갈증 등을 위해 국가는 학교를 세우고 교육자들이 전담토록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학교는 이들을 보듬어 주면서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는 곳이다. 교사는 치유·지도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전문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여기서 전문성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은 '교육자는 모든 경우에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행 역할을 하는 것은 필수이고, 가르치는 아동·학생들의 수준과 지도내용에 따라 때론 의사의 입장에서, 또는 성직자의 마음으로, 교육자의 자세로 그때 그때 운신의 폭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김흥규, 인천일보. 2015. 1. 28)는 것을 의미한다.
전학과 자진 퇴교를 강권하고 퇴학 조치를 함부로 남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언필칭 '최대한의 지도를 했지만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칙에 따라 처리했다'는 입장이다. 선량한 대다수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다'라며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을 이해해 달라는 식이다.

그러나 학교가 교육과 지도를 포기한다면 누가 그 역할을 맡아서 할 것인가? 경찰과 보호관찰관들이? 아니면 검사와 교도관들이 한단 말인가. 이런 현실을 주목한 필자는 정보사회와 청소년 세대의 특성에 착안하게 되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한 세대다. 디지털 감성이 뛰어나고 똑똑하다.
필자는 이들이 TV세대, 영상세대라는 점에 주목하고, 전문가 수준의 관련 문헌을 갖고 있었기에 자료에 근거해 '영상 카운슬링', '영화를 통한 치유', '영화요법' 이론을 정립하게 되었다. '제7의 예술'로 일컬어지는 영화를 통해 교육적 기능, 문제해결과 심리적 치료 기능, 문화·예술·정서·도덕·사회지능 함양,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로준비를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