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
고대부터 현재까지 우리에게 '중국'은 최대 화두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중국을 빼놓고 제대로 담론을 펼 수 없는 게 우리 역사였다. 중국은 우리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좌우하는 존재이기에 미래의 중국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은 이 시대의 주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은 근대 중국 전문가를 양성하는 동아동문서원(東亞同文書院)이라는 대학을 중국 상하이에 설립했다. 이 대학은 졸업을 앞둔 학부생 전원에게 여름방학 3개월 동안 중국 각 지역을 필드조사하게 하고 연구 성과를 졸업논문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각 학생이 같은 지역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중국 각 지역으로 흩어져 발로 뛰면서 중국의 미시적 문제를 조사했다. 이렇게 쓴 학부생의 졸업논문이 요즘 중국 근대의 사회와 경제를 연구하는 데 1차 자료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 대학 졸업생은 일본 외무성과 각 대학에서 중국 전문가로 활약해 일본의 중국학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학술원은 2016년 11월부터 1년간 중국 각 대학에 단기 유학하는 학생 17명을 선발해 중국도시조사사업을 진행했다. 학생이 조사한 도시는 북경, 상해, 대련, 위해, 연태, 남경, 무한, 남창, 중경, 제남 등 모두 10개 도시에 달했다. 참가 학생과 중국의 SNS를 통해 유학생활 중 몸소 체험한 작은 주제를 설정해 중국을 구체적이면서 섬세하게 조사하도록 했다,

어떤 학생은 중국 대학을 조사하려고 동아리에 가입해 축제를 주최하고, 어떤 학생은 공자학원 조사를 위해 공자학원 장학생으로 온 유학생과 대학의 관련 교수를 인터뷰·설문조사를 했다. 북경의 독립운동가 유적지를 자전거로 조사해 코피를 흘린 학생도 있었고, 중경임시정부 청사를 조사하려고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학생도 있었다.

중국 내 태권도 보급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중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의 사범으로 활동한 학생, 각지의 한인 사회와 중국 진출 한국기업을 조사하려고 각종 행사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학생도 있었다. 중국 애국교육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중국 시민을 직접 인터뷰했고, 앞서가는 중국 정보기술이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체험수기 형식으로 조사한 학생도 있었다.
참가 학생 모두 급속한 중국의 변화와 발전에 경외와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우리 사회에 '중국' 하면 떠오르는 여러 나쁜 이미지가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중국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발전하는 정보기술을 실생활에서 체험하면서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중국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임시정부와 한인독립운동가 유적이 제대로 보존·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실태를 조사한 학생은 후손으로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가 학생의 활동기간은 사드문제로 양국 간 관계가 최악인 상황이었다. 그들은 양국 정치적 갈등이 중국 거주 한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중국인의 한국관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체험했다. 비우호적인 중국인도 있지만 친절하게 도와주는 중국인이 더 많고, 한국에 친근감을 가진 중국인이 많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이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면서 미국과 안보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중국인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고 한다.

실학자 홍대용은 1766년 연행사 일원으로 북경을 방문하고, 청국 지식인과 필담을 통해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그는 조선으로 돌아와 교제 기록을 정리해 '건정필담'이라는 책을 남겼다. 이 책은 당시 청국을 만주족 오랑캐라 폄하하던 조선학계에 중국 지식인의 높은 식견을 소개해 충격을 주었다. 이 책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집필에도 영향을 주었다. 사실에서 진리를 구한 홍대용과 박지원은 당대 최고 중국학자였다.
조선사회에 대한 그들의 고민과 열정이 실학파 형성으로 이어졌다. 참가 학생은 물론이고 우리 젊은이 가운데 홍대용, 박지원과 같은 중국 전문가가 배출되기를 기대함과 동시에 후학 양성에 더욱 힘써야겠다는 책임감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