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SBS골프채널·MBC-ESPN 골프해설위원
18-9-0-5-0-5-7. 무슨 숫자를 의미하는 걸까? 어느 독자가 내 핸디캡이 얼마냐고 이메일로 문의해왔다. 칼럼으로 답하겠노라 회신을 했으니 약속을 지켜야 한다. 직장인이던 시절 내 나이 32살, 89년에 해외지사에서 골프를 처음 만나 입문한지 일 년 반 만에 나의 핸디캡은 '0'이었다. 물론 연습했던 반년을 빼면 필드에 나선지 불과 1년 만에 스크래치 골퍼가 된 셈이다. 꼬박 28년 구력 중에 최초의 일 년이 눈에 띤다. 필자는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부임한 곳이 말레이시아 지사. 골프치기 최고의 조건으로 여기는 동남아인만큼 나의 골프 환경은 좋았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골프에 대한 생각과 접근법을 달리 한 것만큼은 자랑하고 싶다. 그 첫 번째가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안 투어의 본사가 위치한 나라로 자연히 세계 각국의 유명 투어프로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자연스레 골프 티칭 환경이 남 달랐다. 나는 그런 교습가중의 한 분을 스승으로 선택했다. 처음엔 거절당했다. 한국 사람들은 성미가 급해 좀 배웠다 싶으면 필드로 직행하는 것이 못 마땅하단다. 그리고 일주일에 4회 그것도 격일로 빠지지 말고 6개월을 요구한다. 시키는 대로 따르기로 하고 고액의 레슨료도 요구도 받아들였다.

나는 당시 결혼을 하자마자 임지로 발령이 난 상태로 지사 근무 초년생에 신혼시절이어서 모든 것이 내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선택했다. 결국은 최선의 선택과 선생님과의 무한신뢰가 그 두 번째이자 세 번째 답이라 하겠다. 그리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배웠다.
그렇게 6개월은 지내고 마침내 첫 번째 필드 라운드가 있던 날. 그러나 보기 좋게 나의 선택과 신뢰가 수포로 돌아가 무너지는 현장의 중심에 서게 됐다. 첫 라운드의 스코어는 123타. 어느 일반인들의 그저 평범한 기록. 예상했다는 듯 선생님의 스코어 카드 분석이 끝난 뒤 그때부터가 진짜 정밀레슨의 시작이었다. 오비(OB)를 내지 않는 법, 온탕 냉탕으로 불리는 숏게임, 집중력과 그린 읽는 기술이 가미되면서 그 후 세 번의 라운드 후에 다시는 내 스코어에 세 자리 숫자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90타를 기록하고 나의 첫 번째 공식 핸디캡은 18, 또다시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81타를 기록한 후로 나의 핸디캡은 9, 그리고 지루한 시간이 흘러 또다시 6개월, 나는 마침내 71타를 기록하였다. 그날부로 나는 핸디캡이 없는 명실상부한 스크래치 골퍼가 되었다. 이 역시도 선생님의 가르침이자 지시였다. 일반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핸디캡은 꼼수이자 허수라 생각할 수도 있다. 갑자기 그런 점수를 기록했다고 나의 실력이 그 수준을 계속 유지할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옳았다. 무모하리만큼 낮은 핸디캡을 맞춰내기 위해 나는 나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부단한 그 노력의 결과로 마침내 아마추어로 그것도 봉급쟁이 신분으로서 이룰 수 없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후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핸디캡은 자신의 평균 스코어가 아니라 자신이 기록한 필드 스코어 중 가장 좋은 점수들의 평균이 핸디캡 계산법이었고 선생님은 내게 최고의 점수를 나의 핸디캡으로 설정하라고 했으니 그 근본 취지는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무사히 지사 생활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오니 회사에는 '수펙스 (super excellent)'란 이름하에 경영 효율의 극대화를 요구하는 사내 운동이 한창 전개 중에 있었다. 요지는 100이란 목표를 세워 90정도 달성하는 것이 인간의 타성이고 인정범위라면 그 목표를 120으로 놓았을 때 그의 달성도 85-90%를 도달하면 원래의 목표치인 100을 달성하고도 남는다는 이른바 인간의 목표와 그의 노력에 대한 심리적 전술과도 같은 게임이었다. 내게는 골프를 통해 이미 익숙한 터였기에 받아들이기에 큰 반발이나 부작용이 없었다.
그렇다. 골프는 동반자와 같이 경기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작은 내기도 하는 경기이다 보니 지기 싫은 건 모두 다의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골프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과의 경기이고 자신이 최고의 스코어를 기록했던 날이 비록 운이라 여겨질지 모르지만 자신의 최고의 잠재력이 드러난 날임을 명심하자. 자신 속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무서운 잠재력이 있다. 요즘은 몸이 안 좋아서, 통 연습을 안 해서, 골프 친 지 오래돼서 등의 엄살보다는 '그래 나도 그때 그런 샷도 했었고 그런 스코어도 기록했었지, 그날이 또 오늘이 아니란 법이 있나.' 주문을 넣어 자신감을 회복하자.

필자의 후반부 5-0-5-7은 본사로 귀임하여 부서장을 할 때, 미국에서 골프대학 유학시절, 되 돌아와 골프 사업에 집중할 때, 그리고 나름 긴 시간이 제법 흐른 나의 지금이다. 나는 이 점수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19년 후 내 인생의 목표인 에이지 슈팅 79를 기록하고 싶다. 그러니 내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해야한다. 에이지 슈팅은 나와의 약속이니 더더욱 엄살이 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