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나라 대표변호사
눈이 내리는 겨울이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얼어붙은 중년의 가슴 속에도 포근하게 내려앉는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뿌려주는 고운 꽃가루인양 세상을 가득 채우는 하얀색의 향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올해 겨울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이 따뜻해져서 차가운 공기가 제트기류를 통해 빠져나가지 못해 추운 날씨가 연속된다는 기상예보관의 '과학적인 듯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들으며 출근시간에 불만스럽게 쫑알거린다. 사람 고생하지 않게 내일 날씨나 제대로 보도하라고. 다음날도 맞추지 못하면서 지구의 미래는 잘도 보도한다는 불평인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눈과 관련한 법률, 재판을 살펴보자.

새해를 맞으러 제주도로 가족과 함께 놀러간 중년의 신사. 밖에는 눈이 내리고 거리의 이국적 정취에 취해 가족과 함께 한라산 자락을 통과하는 도로를 따라 자동차여행을 하려고 한다. 거리의 무법자로 통하는 평소 운전실력을 생각하며 스노우 타이어도 준비하지 않고 한라산 자락으로 접어들어 갈수록 거칠어지는 눈발 속에서 한참 달리고 있다. 너무 많이 올라왔다고 느끼는 순간, 돌아가기에도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려가는 길에서 마주오는 차량을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 차량을 팽이처럼 돌리면서 사고로 이어진다. 이 점잖은 신사는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폭설에 의한 천재지변이라고 주장한다. 변명을 말없이 들어주던 판사는 운전업무로 인한 과실 치상으로 판결한다. 운전자는 눈이 올 것으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스노우 타이어와 같은 안전장구를 갖춰 타인의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란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는 자기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아 지나가는 행인이 미끄러져 다치는 경우 건물주가 손해를 배상해 주어야 하는 법률조항을 두고 있다. 미국 동북부에 있는 메사추세츠주의 어느 집 가정부가 아침에 출근해 냉장고로 걸어가다가 얼음에 미끄러져 심하게 다친 일이 있다. 아마도 집안의 개구쟁이들이 냉장고의 얼음을 꺼내 먹다가 바닥에 흘려놓은 것 같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가정부는 눈(snow)이나 얼음(ice)이나 모두 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깨닫고 소송을 제기한다. 눈에 미끄러졌을 때 건물주가 책임을 지는 것처럼 그 집 안에 있는 냉장고의 얼음이 바닥에 쏟아져 있어 가정부가 미끄러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미국법원의 판결은 어떠하였을까? 얼핏 보면 그 집 사정을 잘 아는 가정부가 아이들이 얼음을 바닥에 흘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견가능성이 있으므로 기각될 것 같은데 법원은 다른 사유를 들었다.
눈은 눈이고 얼음은 얼음이므로 배상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법조항에 배상의무가 있는 것은 눈을 치우지 않아 다친 경우이지, 얼음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스운 판결처럼 보이지만 유학시절 은사였던 하버드출신의 보스턴대학 사이드먼 교수는 제3세계 법의 불명확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 판결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제3세계는 입법을 할 때 조금이라도 불명확한 구석을 만들어 두면 정치·경제·종교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그 틈새를 파고들 우려가 있으므로 엄격하게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온 검찰관 살레는 법전을 살 형편도 안 되는 어려운 나라에서 정교하게 법률을 만들 재주가 있느냐는 한탄이었지만, 제3세계법률 전문가인 사이드먼은 국가의 먼 장래를 보아 입법기술을 키워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사이드먼의 느린 방식이 어쩌면 식민 탄자니아 민중의 삶에 더 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배우고 있다.

겨울에 이웃집 소를 잡아먹은 도둑은 자기 집 앞 뜰에 소뼈를 버리고 파묻으려 하는데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잠시 후 폭설에 소뼈가 완전히 묻힌 것을 본 도둑은 기뻐하였는데, 얼마 후 따뜻한 봄이 오자 체포되고 말았다. 봄 햇살에 눈이 녹아버린 것이다. 도둑은 따뜻해지면 자신을 녹여 모든 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눈의 특성을 몰랐던 것이다.

연말연시. 바쁘게 지나가는 계절이다. 매년 연초의 맹세는 온데 간데 없고, 또다시 새로운 맹세를 하며 작심삼일의 자기 의지를 탓하며 살아가는 세월이기도 하다. 없는 서민들 삶에는 겨울은 하루벌이도 시원치 않으면서 추운 날씨를 따뜻하게 보낼 난방비는 절박한 시기이기도 하다. 모진 삶에 눈 따위가 무엇인가를 한탄할 수도 있는 계절이다. 대한민국 서민들의 최저한의 삶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따뜻한 복지를 실현할 수 있었으면 한다. 최저한의 의식주 보장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이며 대한민국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팍팍한 서민들의 삶에서 내리는 눈이 먹을 수도 없는 고난의 상징이 아니라, 내일의 풍요로움을 알려주는 축복의 상징일 수 있도록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