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봉현 인천항만공사 사장
인천항의 연간 컨테이너 처리 물동량이 역사상 처음으로 300만개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어디든 인천항에 놓여 있는 컨테이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난했던 한국을 세계의 무역 강국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12위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한 중요한 매개체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비록 컨테아너 외관이 녹슬거나 낡은 것도 있지만 말이다.
컨테이너는 본디 속에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규격화돼 만들어진 직육면체형 철재 용기를 말한다. 외국에서는 박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로 5.9m, 세로 2.3m, 높이 2.4m 크기에 무게는 2150㎏로 화물을 채우면 2만7000㎏까지 실을 수 있다.

세계적 석학 피터 드러커는 컨테이너를 세계 경제사를 바꾼 혁신적 발명품이라고 평가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뽑은 '20세기 후반 세계를 바꾼 인물 15인'에는 컨테이너를 만든 말콤 맥린이 선정되기도 했다. 트럭 기사였던 말콤 맥린은 컨테이너의 규격과 관련 기술을 통일시키기 위해 특허권까지 포기하면서 자신의 발명품을 일종의 공공재로 개방했다. 이것이 세계 교역에서 컨테이너화 조류를 급속히 확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볼품없는 직육면체 박스는 이제 우리에게 수출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다.
그런데 만약 컨테이너가 세상에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전세계 물류시장의 90% 물량이 이 컨테이너로 운송되고 있다는 점을 잘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어쨌든 컨테이너가 나왔기 때문에 동서양 간 빠른 무역이 가능해졌으며, 수출을 주력으로 했던 우리나라도 컨테이너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이 컨테이너 덕에 세계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성장했던 시기와 컨테이너화 혁명이 일어난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인터넷보다 먼저 전 대한민국과 세계를 연결해 준 것이 바로 컨테이너임을 의미한다.
부둣가 근처 야적장에서, 도로를 달리는 대형 트럭 위에서, 여기저기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컨테이너는 우리에게 사실 그런 존재다.

오늘날 대한민국 항만 중 한 해에 컨테이너 300만개, 또는 그 이상 처리하는 항만은 부산과 인천 단 두 곳 뿐이다. '300만개 시대'의 개막은 부산항에 이어 국내 컨테이너 물동량 2위 항만인 인천항의 인지도와 세계적 위상을 한층 확고히 하는 기폭제로 떠오를 것이다. 2005년 100만개 달성 이후 12년 만이고, 2013년 200만개 달성 4년 만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배후부지와 도로 등 각종 항만 인프라가 아직 완전히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욱 값진 결과라 하겠다.

인천항의 컨테이너 300만개 돌파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항세의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했다는 데 의미를 갖는다. 특히 무서운 속도와 방향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 속에서 이뤄낸 결실이기에 인천항의 위상은 앞으로 더욱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도 이제 막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따라 이 볼품없는 직육면체 박스가 듬직하고 자랑스러워 보인다. 컨테이너가 세계 경제의 혁신자이자 세계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듯, 인천항도 작지만 단단한 이 철재 박스처럼 우리 사회와 경제에 그러한 역할을 해내는 항만으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