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태 농협안성교육원교수
'11월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다. 농업인의 날은 1996년에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이 기념일은 정부가 당시 농업의 생존전략을 국가적 과제로 고민하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 농업 및 농촌의 소중함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11월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정했을까. 그 연유가 재밌다. 농사에서 필수 요소는 흙과 물이다. 이 중 '흙 토(土)'자를 파자(破子)하면 십일(十一)이 되기 때문에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제정한 것이다.

조선 시대의 실학자인 이규경(李圭景)은 이런 말을 남겼다. "천지인(天地人)을 알지 못하면 농사를 짓지 못한다. 하늘의 힘은 농사철의 계절 변화를 일으키고 햇빛과 바람 그리고 단비를 내려 농산물을 자라게 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땅이 있어야 한다. 흙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자갈밭, 모래밭에서는 아무리 볕과 비가 고루 내려도 곡물은 자라지 못한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의 힘만 있으면 가능한가? 그것도 아니다. 흙을 북돋우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는 사람의 손이 가지 않으면 농산물은 생산될 수 없다."

이처럼 곡식 한 알에는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의 힘, 우주 전체의 힘이 깃들고 배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우리 조상들은 농업을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공산품은 자연을 파괴해서 얻는 것이지만 농산물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짧게 말해 하늘과 땅, 인간의 조화, 그것이 바로 농사라는 얘기다.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인 쌀 한 톨의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 가수 홍순관의 노래 가사를 보면 0.016그램 정도라 한다.

우리 모두 쌀 한 톨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재보자. 거의 감지하기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극히 미미한 무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쌀 미(米)자를 들여다보자. 열 십(十)자에 팔(八)자가 두 개, 여든여덟 번(八十八) 사람의 손이 가야 비로소 우리는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벼를 심고 수확하여 먹기까지 쌀 한 톨을 생산하려면 농부의 수고로운 손길이 여든여덟 번이나 들어간다는 뜻이라 한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지 않는 깊은 속을 보고, 드러난 것 바깥에 존재하는 더 큰 의미와 소중한 가치를 생각해보는 뜻깊은 '농업인의 날'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