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잊다…어른들 착각으로

지난 27일 오후 10시, 계양구의 한 코인 노래방 입구에 청소년 몇몇이 모여 있었다. 노래 부르다가 중간에 쫓겨나온 일행들이었다.

현행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19세 미만 청소년의 오후 10시 이후 노래방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시간이 되자 주인이 학생들에게 나가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다음 목적지를 놓고 몇 분간 토론하더니 다른 갈만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공공도서관 열람실이 문을 닫는 오후 10시 이후에도 10대들은 쏟아져 나온다. 어두운 밤 하릴없이 도서관 근처 공원에 모여 있는 교복 무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체육공원이어도 공놀이는 할 수 없다. 주변 거주민 소음 민원을 이유로 밤 10시면 공원시설 조명을 끄고 이용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무료하게 스탠드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담배를 꺼내 무는 수밖에 없다.

한 여학생은 "매일 공부 끝나고 이 시간에 나오면 친구들이랑 대화 나눌 곳은 이런 어두컴컴한 곳들 뿐"이라며 "어른들이 보기엔 늦게까지 뭘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우린 이제 퇴근해서 노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은 밤 10시가 넘으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어른들 생각이다. 입시 위주 교육에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 입장에선 책 덮으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는 식이다.
▶관련기사 19면

1999년 10월30일 인천 중구 인현동 호프집에서 발생한 화재참극 직후, 단속을 강화해 10대의 유흥업소 출입을 막거나 소방법, 건축법을 새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점차 해당 사안에 대한 논의가 깊어지면서 전문가들은 근본 원인으로 '청소년 방과 후 여가' 문제를 지목하고 나섰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청소년들이 어른들과 함께 술집에서 섞이는 현실을 단순히 일부 학생의 일탈로 여겨 단속만 할 일이 아니라는 심도 있는 얘기들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인현동 참사 후 18년이 흐른 지금, 사고가 남긴 중요한 교훈 중 하나인 청소년 여가 문제는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상담을 담당하는 A교사는 "야간자율학습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해도 아이들은 여전히 학원, 도서관에서 공부와 씨름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이를 해소할 시간도, 적당한 장소도 없으니 어른들 밤 문화를 탐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관련기사
공부 끝나면 밤인데 … 청소년 시설 '영업종료' 하루 평균 327명 이용 … PC방 3곳 만도 못해 자치단체 '예산 부족' 이유로 운영 확대 외면 2004년, 인천 중구 인현동 화재 참사 현장 주변에 인천 학생교육문화회관이 들어섰다. 청소년들이 학교가 끝나고 학원이나 도서관 말고는 갈 공간이 전무했다는 반성이 복합문화교육시설 창설로 이어진 셈이다. 희생자 추모비도 학생교육문화회관에 세웠다. 이를 마지막으로 10대 여가와 관련한 언급은 뚝 끊겼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대학입시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청소년 복지 확대에 적극적이지 못한 자치단체까지 관심 두는 곳 찾기가 힘든 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