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비슷한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경우는 어땠을까? 서독은 1963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까지 대략 3만5000명의 동독 정치범을 서독으로 이주시켰다. 정치범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심각한 정치투쟁을 벌인 사람들이 아니라 서독으로 탈출하려다가 잡힌 평범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서독 정부는 동독 정부에게 1인당 대략 11만 마르크, 우리 돈으로 6천여만원을 지불하고 이들을 데려왔다. '자유를 산다'는 의미에서 '프라이카우프(freikauf)'라고 불린 이 제도는 우리 국회에서도 종종 대정부 질문의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색된 현재의 남북한 분위기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에서 우리가 이 제도를 도입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독일에서 이 제도가 안착되고 확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제도를 통해 서독으로 넘어온 이탈 동독 주민들이 동독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이탈 주민들을 '먼저 온 통일 미래의 꿈'이라고 부른다. 그 꿈을 지키려면 이들을 체제 선전과 비방에 동원하기보다 지금보다 더욱 섬세한 지원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황해문화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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