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수 문학박사·동산중 교사

'부둣길'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인천 둘레길 14코스를 걷게 되면 인천의 바다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게 된다. '한국철도의 탄생역'으로 일컬어지는 인천역을 출발하여 북성포구와 만석부두, 화수부두 등을 걸으며, 인천이 항구도시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지금은 그 어느 곳에서도 1910년대에 여기에 있었다던 해수욕장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또한 탁 트인 바다의 모습도 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주변의 공장에 움츠러든 듯한 바다의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갯벌 위로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다시 먼 바다로 나가는 어선, 그리고 일상의 고단함을 맑게 씻어 주는 석양 등이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광경은 이곳이 아직 살아 있음을 실제로 체험케 해 준다. 더욱이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로부터 광복과 분단, 산업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의 상흔이 여기에는 아직 남아 있다. 특히 강경애의 <인간문제>나 최인훈의 <광장>,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등과 같이 우리 문학사에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소설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쓰여서, 그 장소에 직접 가서 작품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주는 교훈은 실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을 소재 또는 배경으로 취하고 있는 작품은 시에서도 눈에 띈다.

세곡미(稅穀米) 산더미로 쌓이던 만석(萬石)부두/ 미쓰이 그룹 동양방적 공순이들 눈물 바다/ 상륙함 포화에 불바다가 된 레드비치/ 난쟁이 오막살이 허물어지던 은강시 해방동/ 똥물을 뒤집어써도 꺼지지 않는 공장의 불빛/ 세창물산 깡순이들 새벽출정 나서던 뚝방길/ 기찻길 옆 작은학교 아이들 동네 괭이부리말/ 밴댕이 꼴뚜기 파시에 들썩이는 북성포구/ 사는 게 고달프다 응석 부리러 찾은 똥바다/ 쪼글쪼글 주름진 손 내미는 할망 개펄 - '똥바다' 전문

이 시는 이한수의 '똥바다'인데, 여기서는 만석부두와 괭이부리말, 북성포구 등을 주된 배경으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곳의 모습이 모자이크처럼 조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이 시의 끝부분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의 분뇨가 그대로 버려져 일명 '똥바다'로 불리는 북성포구를 찾아 개펄을 바라보며 고달픈 삶의 현실 상황 속에서도 위로 받고 가는, 시의 화자를 만나게 된다. 이는 특히 "사는 게 고달프다 응석 부리러 찾은 똥바다/ 쪼글쪼글 주름진 손 내미는 할망 개펄"이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세기의 '북성부두'와 김정희의 '만석부두에 들어', 김동환의 '화수부두' 등의 시에서는, 이들 포구 또는 항구가 각각 소재나 배경으로 취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대체로 한산한 것이 특징이다. '북성부두'에서 강굴과 청파래, 박대묵 등을 내놓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 굴막촌 일곱 할멈이나, '만석부두에 들어'에서 고기떼 몰려오는 낮꿈을 꾸고 있는 발이 묶인 배들, '화수부두'에서 슬그머니 바다를 몰아내고 부두를 메우고 있는 국적도 구별 없는 통나무들은 모두 이를 나타내 주는 객관적 상관물(相關物)인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 이후 산업화 시대의 공업 발전은 인천 앞바다를 오염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공장에 막혀 바다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하여 만석포구, 화수포구 등 작은 포구들은 그나마 명맥만 유지할 뿐 거의 그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처럼 산업화에 따른 주변 환경의 변화는 작품에도 영향을 미쳐, 이 포구 또는 부두 관련 시들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한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늙은이 아니면 아이들뿐으로, 그들은 좁아진 바다로 가는 길에서 손님 또는 물때를 기다리거나, 더 넓고 깊은 꿈을 이루기를 다짐하는 것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논의된 작품들에는 시대 상황의 변화와 함께 달라진 이곳의 중요한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앞으로 여기는 또 어떻게 바뀔 것이며, 이러한 측면이 작품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겠는가?

요즈음 특히 북성포구는 갯벌 매립 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다. 주변 환경 문제의 개선과 생활의 편의를 위해 민원이 제기되어 왔고, 이에 필요한 예산 확보를 위해 매립이 계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폐수 처리와 인근 악취 문제 등은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매립만이 능사일 수는 없다. 우리 문학사에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들의 배경을 이루며,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이곳을 보존하여 기억하는 일도 실로 긴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중요한 역사문화유산이 보존되고 활용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해, 주민뿐만 아니라 시민, 관계자 등이 함께 만나 더욱 고민하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