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봉현 인천항만공사 사장
우리는 바다를 다양한 의미로 이해한다. 바다는 종종 '어머니의 품', '포용', '무한함'과 같은 너그러운 이미지를 대신한다.
이해인 수녀는 <바다여 당신은>이라는 시에서 바다를 관용의 존재로 인식해 '죄스럽게 비좁은 나의 가슴을, 커다란 웃음으로 용서하는 바다'라고 표현했다.

한편 바다는 험상궂은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조선·항해기술이 발달하기 전 오랜 세월 동안, 바다는 아무리 노련한 선원에게도 항거불능의 공포를 준다. 자신과 동료의 목숨을 언제 앗아갈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존재였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바다에서 끊임없이 투쟁한다. 노인에게 바다는 평안과 안식의 공간이 아닌, 투쟁의 공간이다. 이렇게 바다는 여러 얼굴의 상징적 존재로 우리에게 친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징적 의미로서의 바다가 아닌, 실체로서의 바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체로서의 바다를 '물이 모이는 곳', '담수와 다르게 염분이 있는 물'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바다에서 채취할 수 있는 수산물이 무엇인지, 바다 속 생태계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집중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해양자원이 무엇인지, 한반도를 둘러싼 동·서·남해 각각의 특성이 어떠한지 등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럴듯하게 대답한다면 관련분야 전문가이거나 바다를 통해 삶을 이어가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육지에서 사통팔달한 교통의 요지가 어디인지, 지역별 특산물이 무엇인지, 현재 어느 지역의 땅값이 높고 향후 개발 전망이 좋은 곳이 어디인지 등에 대해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높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과 비교하면 바다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미미한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대륙의 한가운데가 아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 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인간이 물 속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에 바다의 중요성이 일반 국민들에게 선뜻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존재의 소중함은 존재를 부정해 생각해 보면 쉽게 드러난다.

바다가 없다면, 대량화물 수출입을 위한 선박을 띄울 수 없고 항만도 필요없게 된다. 모든 화물은 육상 운송 또는 항공운송을 해야 할 것이고, 국경을 넘나드는 화물량은 급속도로 줄어들어 해외 수입품의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입 물량의 95% 이상이 바다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바다가 없다면, 하루 세끼 밥상에서 김도, 미역도, 생선도 사라질 것이다. 바다는 지구 전체 동식물의 80% 이상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먹거리 중 대부분이 바다가 제공하는 것들이기에 바다 없는 식탁은 맛도, 영양도, 보기에도 황폐하다. 또한 바다가 없다면, 한여름 더위를 잊을 수 있는 피서지는 그늘뿐이다. 요즘은 인공파도를 내보내는 실내 수영장도 있다지만 인공파도는 바다의 시원한 출렁임을 대신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바다가 없다는 가정은 단순한 불편과 풍요의 상실로 끝나지 않는다. 바다는 지구에 존재하는 산소의 70%를 만들고, 기후 변화를 조절한다. 또한 우리는 바다를 활용한 조력발전, 조류발전 등을 통해 에너지를 얻으며 석유·망간 등 해저광물 역시 육상보다 바다에 훨씬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바다는 우리의 식탁과 휴양을 책임지고 이동통로로 활용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가정의 달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기념일이 많다. 그래서인지 다른 행사에 가려져 국민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는 기념일이 하나 있다. 바로 5월31일 '바다의 날'이다. 바다의 날은 해양산업 종사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국민들에게 해양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1996년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이 날은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설치한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 바다의 날 기념행사는 전북 새만금에서 '함께하는 바다, 다시 뛰는 바다'를 주제로 열린다. 이날 행사에서는 해양산업의 4차 혁명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특별전과 '오감으로 느끼는 바다'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열린다. 내년에는 바다와 함께한 오랜 역사를 가진 해양도시 인천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부모에 효도하고 스승께 감사하는 보은의 달이기도 한 5월의 마지막 날에 풍요와 번영을 주는 바다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는 바다를 보는 우리의 시선도 상징을 넘어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하는 실체로서의 바다를 들여다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