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한국외대 중국연구소초빙연구원
대통령이 탄핵 이후 청와대에서 퇴거한 뒤 얼마 있다가 밝혀진 청와대의 비화 하나가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됐다. 작년 말 청와대에서 종이서류를 국수 가락처럼 가늘게 파쇄하는 종이세단기를 26대나 들여놓았다고 한다. 이 기계들을 다 어디에다 쓰려고 구입한 것일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은행에 가서 돈 몇 푼 찾고 나서 손바닥만한 영수증을 종이세단기에 밀어 넣어 파쇄하는 것처럼 청와대가 그런 용도로 그 많은 세단기를 들여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서 검찰이 본격적으로 청와대까지 수사할 것을 대비해서 대통령과 관련된 자료나 서류 가운데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을 미리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청와대에는 종이세단기가 이미 여러 대 있을 터인데, 그렇게나 많이 더 필요했다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다. 그곳에는 세상에 밝혀지면 안 되는 자료가 그렇게나 많은 것일까? 그동안 종이세단기에 얼마나 많은 자료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는지 모르지만, 그것들 하나하나가 이제껏 밝혀지지 않았던 많은 의혹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기록들은 아니었을까?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

나라가 외국의 침략을 받아 일시적으로 위기를 맞아 영토를 빼앗기더라도 자신의 역사를 되새길 줄 안다면, 역시 언제든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오랜 문화 전통을 가진 민족에게는 남에게 내세울 만한 역사뿐만 아니라 자랑스럽지 못한 것도 있기 마련이다.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춘추(春秋)>는 춘추시기 노(魯)나라 12대 242년 간의 연대기다. 공자는 노나라의 역사 사실을 간결하게 적고, 그에 대해 잘하고 못한 것을 논해 대의명분을 밝힘으로써 천하에 바른 정치가 행해지기 위한 규범으로 삼고자 했다. 공자가 <춘추>에서 역사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했다고 해서 이것을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사 저술의 전통이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역대 왕조에서도 내내 이어졌다.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나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承政院)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만 보더라도 우리 조상들이 역사 기록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잘 알 수 있다. 특히 왕조실록은 공정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당시 살아 있는 최고 권력자인 왕은 실록 편찬을 위한 기초 자료인 사초(史草)도 볼 수 없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왕이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편찬했을 만큼 최대한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기록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역사란 '지나가다'라는 뜻의 력(歷)과 '기록'이라는 뜻의 사(史)자가 합해진 말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뉴스와 같이 단순한 기록물들을 모두 역사라고 하지는 않는다. 역사 기록을 통해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을 살펴 교훈을 삼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미래의 역사를 예측하고 진단할 수 있을 때에만이 비로소 역사가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임금 가운데 가장 포악스러웠던 연산군조차도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역사뿐이다(人君所畏者史而已)"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날 그 무엇보다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한 바른 역사를 기록해야 할 책임자들이 아예 그것들의 기초 자료들을 대대적으로 파기해 아예 역사를 평가하는 것조차 못하게 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아무리 부끄러운 역사라고 할지라도 역사 사실을 하나하나 바르게 밝힘으로써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교훈을 삼을 줄 알아야 진정 역사를 되새기고 나라를 다시금 세울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역사가 두려워서 진실을 가리고 자신들의 허물을 숨기려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역사에 두 번 죄를 짓는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