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 - 김해자

▲ 강동우 문학평론가
한 집 건너 지하공장
미싱 소리 드르륵대던 곳
사철 시꺼먼 하늘만 내려앉던 청천동
십자약국 골목 파란 대문
빨간 닭장집 안 녹색 부엌문
방문 벽에 걸린 푸른 작업복
왼편에 하얀 명찰 생산2과 김정례
앉은뱅이 책상 앞에 '해고무효소송 승소판결문'
옆에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재, 안에 쓰다만 편지
"공부 열심히 해. 돈 걱정 말고 누나만 믿어라"
방문턱에 걸린 두 발
부엌 바닥에 늘어뜨린 긴 머리칼
아궁이에 타다 만 연탄
잠긴 문 바라보다 멈춘
반쯤 열린 눈
밖에 하얀 눈

어떠한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은 성과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도시이든 사람이든 혹은 인생이든. 우리가 바라보는 일상적 현실 속에서도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 이 시는 노동현장의 구체적 현장성과 더불어 희망과 절망의 진자운동 속에 헌신했던,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시 속에 묘사된 '김정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인물이다. 미싱일을 하면서도 어린 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픔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존재다. "공부 열심히 해. 돈 걱정 말고 누나만 믿어라"라는 쓰다만 편지는 산업화시대에 희생됐던 우리 누나, 어머니, 할머니를 연상하게 한다. '파란 대문', '녹색 부엌문', '푸른 작업복'처럼 푸른 희망이 있기에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는 그런 희망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루지 못한 채 사라져야 했던 삶의 비극성을 보여준다. 연탄 가스에 중독돼 방문을 완전히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부엌 바닥에 쓰러져 이 세상을 등진 '김정례'의 시선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 시선은 고통으로 가득찬 '반쯤 열린' 희망의 눈빛일 것이다. 시인이 그 죽음을 '승천(昇天)'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고통과 희생의 숭고함 때문일 것이다. 이 시가 감동을 주는 이유다. 먼 이야기 같지만, 따지고 보면 불과 30년도 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청천동(淸川洞)은 부평공업단지가 조성되고난 뒤로 급격한 발전을 하고 있다. 냇물이 맑아서 청천(淸川)이라 불리던 곳. 그 속에는 못다한 꿈이 승천(昇天)한 고결한 희생이 있다.

▲강동우 문학평론가: 2001년 <현대시> 평론 등단. 한양대 국문과 및 대학원 졸업. 계간 <시현실> 편집 주간. 가톨릭관동대 베룸교양대학 교수.

▲김해자: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 등단. 2008년 제10호 백석문학상, 전태일문학상 수상.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시창작 강사. 노동문화복지법인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