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예총사무처장·시인
본시 작업장을 뜻하는 말로 시작된 '워크숍'의 사전적 정의는 연구협회, 공동수련, 공동연수다. 문장백과에 의하면 그 절차를 이렇게 설명한다. '문제제기, 문제해결을 위한 조언, 문제해결의 강구와 과정, 잠정적 결론의 형성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협의에 의해 얻어진 결론은 어디까지나 가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실천을 통해 그 결론의 타당성을 평가하게 된다.'

좀 오래된 일이기는 하나 강의를 나가던 대학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워크숍'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재차 질문을 던지자 기어드는 소리로 말했다. "1박2일요." 잠시 후 "뒤풀이요"라고 말하자 강의실 내 웃음이 꽉 차 버렸다. 여러 가지의 대답이 줄을 이었지만 정확한 대답은 정말 기대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워크숍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적은 것 같다. 그간 본인이 참여했던 워크숍은 사전적 정의에 입각해 따르기는 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 도출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떤 때는 토론회인지, 공청회인지, 설명회인지 헷갈릴 때가 많은 반면 설령 토론회라고 쳐도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지 않고 흐지부지 분임토의마저도 형식적으로 마무리되고 했었던 개운하지 못한 기억이다. 다행스럽게 합의에 의해 결론을 가져왔다 해도 '실천을 통해 타당성이 평가'되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예는 흔치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모여 집회는 했는데 '연구'는 없는 연구집회에 불과했고 '수련'과 '연수'는 부족한 공동의 수련, 공동연수에 머무른 그저 그런 일이었다.

포럼문화, 토론공청문화가 부족한 인천에서 어쩌다 하는 토론이 구체적 실행으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텐데 하는 아쉬움이 참으로 많다. 더 큰 문제는 내가 그런 워크숍에 참여하면서도 묵과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라는 것이다.

2016년인가 싶다. '글로벌 인천'의 포럼, 부제로는 '글로벌도시로서의 인천문화 패러다임 변화'였다. 전문가와 일반 참여자가 구분되는 비대칭적 토의로서 발제자의 의견을 옹호내지는 비판하면서 논박하는 데 비중을 두건만 '글로벌도시로서의 인천문화'가 주제라면 발제자와 토론자가 뒤바뀌어 인천문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토론자로, 비판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하고 있으니 한심할 수밖에 없는 정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던 포럼으로 남는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오후시간에 이뤄진 '인천 문화전문기관 신년 워크숍'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주제는 '인천 지역문화인재 양성방안'이었다. 사회자에 의한 요식 프로그램을 빼면 그 흔한, 영혼 없는 토론회나 포럼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무늬만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이란 주제사실을 있는 그대로 확인하고(사실인식), 그것을 분석하고, 객관화하며(사실분석), 목적을 되집고(생각성찰), 당사자(참석자)들이 자발적으로 향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네 가지 원리다.

이 원리가 그대로 워크숍의 진행(촉진) 순서일 때도 간혹 있을 수 있지만,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나를 더 거든다면 사회자를 이것도 '촉진자'가 정식 명칭임을 밝혀두며 더 나가보자. 다른 의견을 존중해가며 다양한 의견을 몇 가지 개념으로 묶는 공통분모를 찾아 잠정적 결론을 타당성 있게 평가해야 하나. 별 의식 없이 치르는 '했다'하는 치적의 원리만 있을 뿐 건질 것이 없는 것 같다.

문제제기와 문제해결을 위한 조언, 문제해결을 위한 강구, 잠정적 결론은 가설이긴 하나 그 결론의 형성이 전혀 없는 일방적 발표와 홍보, 그리고 문화전문기관이 진행한다 하니 '문화 비전' 끼워 넣기. 그래 인천이 문화성시 도시로 발돋움하려니 인재가 필요하다는 등식은 성립되긴 하겠지만 양성의 방법론은 없고 양성기관이 있으니, "등록 하세요"하는 홍보에 지나침이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고 공감하지 않는 포럼과 워크숍이라면 여전히 불가능의 연속, 가능의 연속으로 만드는 첫 걸음이 경청 그리고 자기의 표현, 공감과 연대로 이어지는 주최 측과의 교감이 결과를 낳는 것이다. 워크숍, 이제 알고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