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로 온 우편물 더미에 연하장 한 장이 끼어있었다. 어느 공공 기관에서 보낸 의례적인 연하장이었지만 그것에 먼저 손이 갔다. 연하장 자체가 신기한 물건이다. 요즘은 이모티콘을 날려 버리면 끝이다. 이제 '카드'는 체크카드나 신용카드이지 크리스마스카드가 아니다. 청춘 시절의 필자는 '카드' 구입에 적지 않은 지출을 했다. 돈을 아끼느라 전년도에 받은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 중에서 상태가 좋은 것을 골라 속지를 살짝 교체해서 보내기도 했다. 당시 연말 분위기는 거리에 연하장과 카드가 내걸리면서 시작됐다.

군에 입대하기 전 이태 동안 연말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우체국에서 봉사를 했다. 중구 항동에 있는 인천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나누는 작업을 도왔다. 창구 뒤쪽에 분류장이 있었다. 한 시간에 한번 씩 말 그대로 산더미 같은 우편물이 들어왔다. 대부분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이었다. 통계를 찾아보니 1980년 연말 한 달간 전국 우체국에 쏟아진 연하 우편물이 1억6300만 통으로 추산됐다. 국민 한명 당 평균 4통의 연하장을 보낸 것이다.

우리는 쏟아진 우편물을 각 동별로 분류하는 일을 했다. 지금은 인천의 읍·면·동이 150개 가까이 되지만 당시는 50개가 채 안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걸 하면서 예기치 못한 '정보'를 얻곤 했다. 우편물 중에 눈에 익은 이름들이 있었다. '아하, 얘가 얘한테 호감이 있구나.' 발송자와 수신자의 관계를 본의 아니게 알게 된 것이었다. 그걸 모르는 척 하느라 한동안 입이 근질근질했다.

필자가 봉사활동 했던 '인천우체국'은 이제 그곳에 있지 않다. 건물은 그대로이지만 이름이 생소하다. 지난 2005년 소리 소문 없이 '인천중동우체국'으로 바뀌었다. 중구와 동구를 아우르는 의미였지만 초기엔 "중동국가와 관련한 우체국이냐"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인천우체국'이란 이름은 연수동에 새롭게 세워진 우체국으로 이관됐다. 역사적 흔적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이름을 너무 쉽게 넘겨 준것 아닌가 싶다. 하긴 머지않아 우리 곁에서 '우체국'이란 말도 사라질 듯하다. 요즘의 우체국은 우편보다 택배 업무가 많아 '인천택배국'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