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께 미리 양해를 구한다. 이 글은 다소 엽기적이다. 실제로 어느 강의 중에 이 내용을 언급했더니 "어우"하면서 몸서리치는 소리가 곳곳에 터져 나왔다. 비위가 좋지 않은 독자는 신문의 다른 면을 펼치시길 간곡히 권한다.

필자가 나고 자란 동네에는 '수문통'이란 갯골이 있었다. 화수부두 쪽 바다와 이어져 하루에 두 번 짠물이 드나들었다. 이 수문통은 거대한 쓰레기통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집안의 온갖 지저분한 것을 이곳에 던져 버렸다. 썰물은 이것을 고스란히 넓은 바다로 끌고 나가 깨끗이 치워버렸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수문통 옆으로 등하교를 했다. 물이 차면 친구들과 물수제비를 뜨며 놀곤 했다. 어느 날 밀짚모자를 눌러 쓴 노인이 나타났다. 그는 물 빠진 수문통에 내려가 갈고리가 달린 대나무 장대를 이용해 뭔가를 끌어냈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새끼줄로 묶은 시멘트 종이 포대였다. 그것을 건져 올려 자전거 짐칸에 싣고 사라졌다. 이후 한 달에 서너 번씩 그 광경을 목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게 뭘까. 아이들은 물수제비 뜬 실력으로 시멘트 포대 맞추기 시합을 했다. 물에 젖은 포대는 던진 돌에 쉽게 터졌다. 순대처럼 생긴 물체가 삐져나왔다. 탯줄과 태반이었다. 소문이 돌았다. 불치병 걸린 노인네가 그것을 수거해 삶아 먹는다고. 자신이 먹지 않고 모아서 어디에 팔아넘긴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예로부터 태를 잃으면 아이가 불행해진다는 속설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태를 소중히 여겼다. 주로 불에 태워 다른 사람 몰래 태항아리에 넣어 고이고이 묻어두었다. 산부인과가 귀했던 60·70년대 만해도 흔히 산파의 도움으로 집이나 조산소에서 출산을 했다. 탯줄과 태반을 봉지에 싸서 그냥 수문통에 던져 버렸다. 용동에 있는 산부인과 병원들도 이곳에 버린다는 풍문도 돌았다. 가끔 낙태아와 사산아도 이곳으로 왔다.

기억 속에서 잊힌 수문통의 '태반'이 청와대 덕분에 다시 떠올랐다. 그 노인의 모습과 그때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대통령이 알고 있는 국가 비밀급 '비법'을 그 노인네는 어떻게 알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