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가을 사무실로 30대 초반의 자그마한 여성이 필자를 찾아왔다. 명함을 받아보니 영화감독이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대학 조교 같은 모습을 한 그는 정재은 감독이었다.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내밀었다. 겉장에 '고양이를 부탁해'라고 쓰여 있었다. 정 감독은 인천의 로케이션에 대해 상의하고 싶어 했다. 시놉시스를 읽고 난 후 주저 없이 만석동 일대를 추천했다. 영화 분위기랑 잘 맞을 것 같다며 지나가는 말로 북성포구도 언급했다.

영화에서 북성포구는 태희(배두나)가 지영(옥지영)을 불러내 만나는 장면에서 나온다.
북성포구는 고깃배가 제 편한대로 아무렇게나 닿는 야매(野昧)한 공간이다. 도시의 뒷간 같은 이 후미진 곳을 애써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필자도 그 중 한사람이다. 아예 이곳의 '홍보대사'를 자임하고 있다. 외지인들과 인천기행 할 적마다 맨 마지막 코스는 거의 이곳이다. 대한제분 공장 옆길이 아닌 만석동 고가도로 아래쪽 길을 일부러 택해 포구로 향한다. 공장 담이 만든 좁은 골목과 다닥다닥 붙은 횟집을 거쳐, 드디어 포구로 나오면 백이면 백 모두 감탄사를 내지른다. "와우, 판타스틱!" 신포동, 자유공원, 차이나타운을 지나오면서도 나오지 않았던 탄성이다. 여기에 노을까지 깔리면 그들은 거의 실신 상태에 빠진다.

최근 북성포구가 뜨겁다. 준설토기장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일부를 매립할 계획이다. 오염된 갯벌의 악취와 낙후된 도심의 미관을 개선하는데도 목적이 있다. 이에 매립을 반대하는 '북성포구살리기 시민모임'이 급히 결성되었다. 그들은 고유한 가치가 사라지는 것을 우려한다. 그 당시 정재은 감독에게 물었다. "왜 인천에서 찍을 생각을 했어요?" 그는 뿔테 안경 너머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인천은 고양이를 닮았어요.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도시라고나 할까요." 다른 건 몰라도 북성포구가 고양이 같은 곳이라는 것에 절대 동의한다. 길들여진 고양이는 더 이상 매력 없다.

사람이나 도시나 너무 예쁘기만 하면 질린다. 송도, 청라로도 인천의 화장술은 충분하다. 묵은 내 나고 못생긴 포구 하나 정도는 남겨 둬도 좋지 않을까.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