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담을 넘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몇 기의 묘가 비석이 뽑힌 채 파헤쳐 있었다. 서둘러 묘지 전체를 훑어보았다. 다행히 대부분의 묘는 온전했고 묘역은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화요일 연수구 청학동 '외국인묘지'를 찾았다. 이곳은 필자가 '은밀하게' 발걸음을 하는 장소 중 하나다. 열 번 넘게 왔지만 늘 문이 잠겨 있어 어쩔 수 없이 '개구멍' 혹은 '담치기'로 출입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곳에서의 '비석 감상'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묘마다 묘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흐릿한 비문(碑文)을 정신없이 읽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언제나 그 묘역에서는 나 혼자였다. 햇살 좋은 대낮이었지만 솔직히 적잖이 놀랐다. 그는 인천시종합건설본부의 직원이었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청학동 외국인묘지는 인천가족공원(부평)으로 이전한다. 몇 년 전부터 간다만다 하면서 찬성과 반대 의견이 엇갈렸다. 한쪽은 혐오시설로 간주했고 다른 한쪽은 문화재 시설로 봤다. 이장 공사에 앞서 지난 10월 24일 개토제(開土祭: 토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지냈다. 며칠 후 첫 삽을 떴는데 예기치 못한 관과 옷가지가 발굴되었다. 문화재적 조사가 필요한듯해서 현재는 공사를 중지시킨 상태라고 한다.

1883년 외국인묘지는 북성동 바닷가에 자리 잡았다. 도시화에 밀려 1965년 이곳 청학동으로 옮겼다. 의료선교사 랜디스 박사, 인천해관원 중국인 우리탕(오례당), 오페라 '나비부인'의 실제 주인공 딸 하나 글로버 등 현재 66명의 이방인들이 잠들어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개항기 역사와 맞닿는다. 한 사람 당 책 한권이다. 저마다 '핑계 있는' 무덤들이다. 그냥 묻어 둘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외국인묘지에 대한 가치 재조명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이전하는 묘역은 인천가족공원의 중국인묘역, 일본인묘역과 이웃하게 된다. 환경이나 부대시설이 개선되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비석 감상'을 위해 담치기를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랜디스 박사님, 이사 잘하시고요, 집들이 때 봬요."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