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홀대' 논란에 두테르테 '욕설'까지…러 정상회담서도 '빈손'


내년 1월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마지막 아시아 순방에서 순탄치 않은 여정으로 미국이 처한 녹록지 않은 국제정치 환경과 곧 퇴장하게 될 외교무대에서의 '레임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 라오스를 거치는 이번 순방을 그가 임기 중 핵심 정책으로 추진한 '아시아 중시' 전략을 마무리하는 기회로 삼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순방 기간 내내 오바마 대통령은 각국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공격과 비우호적인 대우에시달렸다.

이 같은 분위기는 순방이 시작되자마자 감지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주최국인 중국의 항저우(杭州)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의 전용기에는 통상 외국 정상에게 제공되는 레드카펫이 깔린 이동식 계단이 설치되지 않았다. 이에 중국이 고의로 오바마 대통령을 '홀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중국 측이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입국관 백악관 출입 취재진을 통제하는과정에서 백악관 직원과 중국 관리 사이에 언쟁이 오가는 등 곳곳에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 같은 신경전은 그동안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 여러 국제 현안을 놓고 충돌하며 아시아 패권 경쟁을 벌여온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으로 평가됐다.

미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홀대' 논란에 대해 5일 오하이오에서 노동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것은 무시의 표시"라면서 "나라면 당장 여기서 떠나자라고 했을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번 아시아 방문길에서는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 등 전통적으로 미국과 대결 관계에 있는 국가뿐 아니라 터키와 필리핀과 같은 기존 동맹국들도 오바마 대통령에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6∼8일 라오스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 기간에 지난 6월 취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이 회담을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욕설을 섞어가며 맹비난하자 6일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5일 라오스로 출발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오바마는 자신이뭐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니다"라면서 "(오바마가 마약과의 전쟁을 언급한다면) '개XX'라고 욕을 해줄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오바마 대통령의 필리핀의 '마약과의 유혈전쟁'과 관련, 인권 침해 우려를 제기할 것으로 알려지자 필리핀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미 CNN방송은 "이는 미국 대통령에 대한 놀라운 무례"라면서 "그의 예측 불가능성과 미국에 대한 식민지 시대의 분노를 부채질하는 행위는 오바마 대통령 임기 말의 백악관이 원하지 않는 혼란"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4일 항저우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한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대통령 역시 미국과의 입장차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모든 형태의 테러는 나쁘고 악"이라며 미국이 시리아 내 수니파 급진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손잡은 쿠르드 민병대 역시 테러단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양자 회담을 열어 시리아 사태와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미 CNN방송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고별' 아시아 순방에서 "혼란한 세계의 신랄한 공격에 시달렸다"면서 "외교적 무시와 강대국 간 경쟁 속에 이뤄진 이번 순방은 오바마 대통령이 후임자에게 물려줄 세계의 불안정한 본질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CNN은 또 "오늘날 국제정치는 경쟁하고, 성장하거나 부활하는 많은 세력이 뒤섞여 있으며 이들은 세계 2차 대전과 냉전 후 상황과 비교하면 단순히 미국과 보조를 맞출 이유가 적다고 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