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인천 편집장


"1960년대 초 인천 전역에 콜레라가 돌아 옛 송도역 인근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우리 마을엔 한 사람도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없었어요. 우물을 파면 기름이 둥둥 떴는데 우린 그 물을 먹고 자라서 절대로 콜레라 안 걸린다고들 했어요."

몇 년 전, 옥련동 옥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계속 살고 있던 어느 주민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한때 옥골은 '기름골'이었다. 1950년대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 옥련국제사격장 인근 산기슭에 미군 유류창이 자리 잡았다. 수원비행장 등 수도권 일대 미군부대에 기름을 공급하기 위해 지름 30m의 대형 기름 탱크 20여개가 있었다. 인천항으로 유조선이 들어오면 기름은 POL(미군유류보급창, 현 용현동 SK스카이뷰아파트)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옥골 저장탱크 까지 왔다.

송유관 파이프는 이음새가 자주 터졌다. 주민들은 깡통을 받쳐 기름을 받았다. 집집마다 된장, 고추장 대신 기름을 넣은 장독들이 있었다. 깡통을 넘친 기름은 논밭 웅덩이에 고였다. 겨울철 두껍게 말라버린 기름층을 회 뜨듯 양철로 벗겨서 그릇에 담았다. 이것은 훌륭한 땔감이었다. 왕겨에 버무리면 한줌으로도 하루 종일 불기가 살아 있었다. 남는 것은 몰래 내다 팔기도 했다. 주민들은 땅 속에 스며드는 미군 기름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최근 문학산 일대의 유류 오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인근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도 유류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20m 떨어진 곳에 미군 유류저장시설 1기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남구 용마루 지구 아파트 공사를 하던 중 다량의 유류 오염 토양이 발견되었다. 과거 수인선 철도를 따라 이어진 미군 송유관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오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고팠던 시절, 주민들은 송유관의 통과를 마을에 내린 축복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감당하기 힘든 골칫덩어리로 변했다. 콜레라와 미군 기름, 다 잊힌 줄 알았는데 망령처럼 다시 우리 곁에 다가 왔다. 미군 기름은 '콜레라 백신'이 아니다. 발암물질 일뿐이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