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인천 편집장


지난 3월 초 대구에서 발행하는 지역신문에 인천과 관련한 기사가 하나 실렸다. 국채보상의원금(國債報償義願金) 영수증이 처음으로 발견됐다는 보도다. 광무 11년(1907년) 4월 4일 대한매일신보가 발급한 영수증에는 '64원을 경기도 강화군 화도면 장곶동 동네 주민 모두가 함께 모아냈다' 것을 의미하는 글씨가 적혀있다. 장곶동은 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다.

일제는 경제적 침투를 위해 대한제국에 돈을 빌려 주었다. 1907년 까지 총 1,300만원이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3천300억 원 가량 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 정도의 돈도 갚을 능력이 없었다. 대구지역에서 "국민들이 담배를 끊어 돈을 모아서 갚아 보자"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국채보상' 하면 자연스럽게 '대구'가 떠오른다. 대구에서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중구를 아예 '국채보상구'로 바꾸자는 여론이 있을 정도다. 더나아가 이 운동의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시작은 대구이지만 이 운동을 가장 먼저 실행한 곳은 인천이다.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2003년 발행 '인천학연구'에 수록된 '인천광역시 지역의 국채보상' 논문(이상근 대불대학 교수)에 의하면 인천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다양한 방법으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민족 자본가로 구성된 인천항신상회사(현재의 인천상공회의소) 임원들을 중심으로 단연(斷煙)동맹회를 결성해 전국에서 최초로 의연금 모집을 실천했다. 지역 여성들은 쌀 절약과 패물 모으기 운동을 펼쳤으며 주민들은 땔감과 짚신을 팔아 의연금을 마련했다. 전등사, 정수사 등 강화의 사찰에서도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화군 화도면 주민들의 의연금 영수증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대구지역에서는 국채보상운동사(史)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나왔다며 흥분했다. 정작 인천에서는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인천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을 '인천주권정신'으로 승화 시켜 보는 작업이 필요할 때다. 110년 전의 영수증 한 장이 "정신 똑바로 차려라"라는 준엄한 목소리로 들린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