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일기를 써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은'으로 시작해서 그날 한 일을 나열한 뒤에 '참 즐거웠다'로 끝나는 글을 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주 일기 검사를 받던 시절에 '오늘의 일과'를 나열하고 한 마디 추상적인 감상을 덧붙이는 것을 일기라고 생각했으나 단지 그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일기가 문자 그대로 하루(日)의 기록(記)이라면 몇 가지는 확실해진다. 우선 일기는 사소해 보이는 사건을 기록의 대상으로 한다. 또 그 사건들에 대하여 주관적인 평이 들어갈 수 있다. '사건나열식' 기록에도 빠짐없이 '참 재미있었다'하는 식의 논평이 들어가지 않았는가. 이때 평은 사소한 감정부터 시작해서 사건 전반의 논평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일기를 '오늘 일어났던 사건들을 대상으로 한 기록자의 주관적인 평이 붙는 기록'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일기는 기록의 방식 중 참 '사소한' 방식인 것 같다. 하루치의 개인적인 사건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소한 것이 곧 무능력한 것은 아니다. 사소한 기록을 통해 자신을 탐구하는 개인은 단단해진다. 그러한 개인이 조금 더 나은 '자신'을 생각하고 그러한 생각들이 모여 좀 더 이 세계를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간다. 일기를 쓰자는 캠페인이 아니다. 다만 너무 큰 '명목'―이를테면 국가 안보나 대학경쟁률과 같은 시장논리―앞에서 자주 스러지는 작은 인간의 삶을 지키는 것은 그런 사소한 기록에서부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기라는 '사소한' 기록을 통해 기록자는 특정 사건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써내려가며 그것이 자신의 일부임을 확인하게 된다. 설령 그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이 비합리적이고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더라도 그렇다. 오히려 그러한 내밀한 자기고백을 통해 기록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게 되며 끊임없이 자기에 대해 묻게 된다. 일기는 '나'라는 '인간'이 무어냐 묻는 인간작용의 제(諸)과정이다. 곧 인간 자신이 스스로를 인간답게 만듦을 매일 더 기억하게 만드는 일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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