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태 인하대 교수

논란도 많았던 '김영란법'이 마침내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김영란법으로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입법예고한 지 2년7개월이 지나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 등 4개 단체에서 헌법재판소에 각각 헌법소원을 냄에 따라 1년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서야 겨우 시행하게 됐다.

그 내용을 보면, 공직자, 언론사 종사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는다. 또 직무 관련 사람으로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하며, 공무원은 5만원 이하의 선물만 받을 수 있다. 대신 경조사비용은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이 법은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떨쳐버리고 깨끗하고 공정한 나라로 변모할 수 있는 제도적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환영할만한 일이다. 부패가 줄어들면 그만큼 국가정책의 공정성도 확보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 빠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단지 국회의원에 대한 예외조항 삭제, 이해충돌방지조항 추가, 수수품목 중 농축산물 제외, 검찰과 같은 법집행 기관의 고질적인 병폐인 불공정성 등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남아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부패척결을 통해 확보하고자 하는 국가정책의 공정성은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정계나 언론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는커녕 관심조차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신뢰는 가시적·비가시적 거래비용을 절감해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하며 경제성장에도 기여한다. 정치인이나 관료의 부패를 줄이고 국민에 대한 반응성을 높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며 공공재를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한다. 또 신뢰는 개인의 차원에서도 삶의 질을 높이고 정신건강을 증진시켜 삶의 만족도를 제고하고 수명을 늘리는데도 기여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사회신뢰는 서로 처음 만나거나 익명의 사람들을 통합해 조화로운 관계를 맺도록 한다.

사회통합에도 기여하고, 국가적인 현안에도 적극 관여해 자발적으로 공동의 문제해결에 협력하도록 한다. 따라서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는 갈등이 증가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크다. 한 사회의 신뢰는 정부기관과 제도에 대한 신뢰에 의해 좌우되고, 정부와 제도에 대한 신뢰는 다시 국가정책의 공정성에 의해 좌우된다. 국가가 공정하다고 믿으면 서로 모르거나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개인 간에도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정책의 공정성과 정부에 대한 신뢰는 부패척결만으로는 확보할 수 없다. 부패 척결은 공정성 확보와 신뢰 회복을 위한 외과적인 처방이고 첫걸음에 불과하다. 체질개선이 없으면 백약이 무효다. 불법적인 로비도 없고 정책결정과정에서 이해당사자를 배제하더라도 특정 집단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국가정책이 나올 수 있다. 아니 그런 경우가 더 많을지 모른다. 밀양송전탑 건설,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드 배치 지역 선정 등과 관련된 정책들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상대방도 옳을 수 있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관용의 자세,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와 뛰어난 분석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입안능력, 생각이나 이해관계의 차이를 생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갈등관리능력이 필요하다.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적인 자세로 일부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반영해 밀어붙이기, 주먹구구, 속전속결로 만든 정책을 만든다면 그 과정에서 일부 이해당사자들로부터의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해당사자들로부터 공정성을 인정받기보다는 불신을 유발할 것이다.

대다수로부터 공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불신당한 국가정책은 집행과정에서 반발이나 비협조적인 태도를 초래해 정책의 효율성 내지 효과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국가정책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키우고, 다급한 당사자는 부정청탁이나 금품제공의 유혹을 키우게 될 것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잡초를 뿌리째 뽑지 않고 낫질만 한다면 잡초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낫질에 지쳐 아예 잡초제거 자체를 아예 포기할 수도 있다. 국가정책의 공정성과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김영란법을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