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수필가 남동농협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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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수필가 남동농협 조합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정성을 다해 가꾼 농작물이 시름시름 말라죽고 있는 것이다.

예년처럼 올해도 농협에서 구매한 퇴비 거름을 준 후 각종 채소 모종을 심고, 틈만 나면 관정 모터를 돌려 지하수를 뿌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종은 하루가 다르게 줄기를 뻗었다. 어느 날, 농사에 한참 선배인 친구는 비료를 주면 열매가 전보다 훨씬 크고 많이 달릴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남동농협 영농교육 때, 토질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능하면 비료나 제초제를 뿌리지 말라고 해 퇴비만 사용해 왔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꿔 원두막 창고 한구석에 보관해 온 비료를 꺼냈다. 물론 비료 덕을 본 과실수와 옥수수도 있지만 친지들과 나눠먹기 위해 가장 공을 들여온 참외, 수박, 오이는 절반이 고사했다. 과욕이 빚은 참사였다.

수년 전, 가을에 심은 감나무 묘목 130그루 중 다섯 그루만 남고 모두 동사한 것도 원인은 과욕 때문이었다. 가을에 심은 감나무 묘목은 추위에 약하다고 해 수도파이프 보온용 스티로폼으로 꼼꼼히 감싸주었고 그 덕분에 무사히 겨울을 넘겼다.

5월이 돼 날씨가 풀리자 서둘러 스티로폼을 제거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는 냉해가 덮쳤다. 올가을부터 감을 따려면 가지를 햇볕에 노출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겨울옷을 벗겨야 한다는 욕심과 서두름을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농사엔 게으름도 한 몫 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과욕 탓으로 실패한 농작물은 경험을 거울삼아 다음 해엔 풍작을 이룰 수 있지만 인생살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듯 싶다.

자녀의 대학 전공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오던 친구가 있다. 그는 유명한 간호대학에 재학 중인 딸을 법학전문대로 전학시켰고 덕분에 딸은 변호사가 돼 결혼 후에도 법무법인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이번엔 문과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을 의과대학으로 편입시켰다.

하지만 의학에 적성에 맞지 않은 아들은 유급을 거듭했고 힘들게 졸업을 한 후에도 의사 국가고시에 번번이 낙방했다. 다음 해에 아들은 다행히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이미 전공의까지 마친 친구들보다는 한참 뒤졌지만 가족들은 이제 불행은 끝나고 앞으로는 행복한 날들만 남아있다며 기뻐했다.

얼마 전 지방의 병원에서 인턴을 하던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서둘러 문병을 갔다. 무거운 침묵만 흐르는 병실에서 친구의 부인은 차마 입을 열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과욕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인생이 계속 꼬이고 있다며 남편을 원망하는 내색이 역력했다.

30대 중반이 넘은 친구의 아들은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적성에 안 맞는 공부를 해야 했고, 인턴 과정을 밟기 위해 생각지도 않은 지방에서 자취를 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녀의 불행을 원하는 부모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부모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심성이 여린 아들이 처자식을 거느리고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전문직이 더 낫다는 욕심에 일방적으로 강요한 자식 사랑이었으리라.

과유불급!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마음을 다스림은 쉽지 않은 말이다. /김사연 수필가 남구농협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