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준 인하대 교수
조병준 인하대 교수

지난 3월,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는 세계 최상위 수준의 프로 기사 이세돌 9단과 5번에 걸친 공개 대국을 가졌다. 알파고가 4승 1패로 승리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는 인공지능의 등장에 따른 두려움과 기대로 떠들썩했었고, 이에 대한 뜨거운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서 알파고를 화두로 삼은 이유는 빅 데이터를 이용한 초보적 단계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휴먼 3.0(Human 3.0)' 시대의 도래를 구체적으로 상징화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휴먼 3.0'이란 표현은 과학저술가인 피터 노왁(Peter Nowak)의 저서 (2015)에서 차용한 것이다.

물론, 이 용어가 학술적으로 완전하게 검증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용어는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 로보틱스, VR 등의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신체와 결합하는 시대를 간단명료하게 함축해 표현한다는 점에서 칼럼 주제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된다.

대다수의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과 로봇 그리고 사이버 세계라는 가상현실이 만들어 낼 인간 사회의 환경변화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달리 말하면, 현재 우리 인간이 수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로봇과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면서 인간의 직업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이란 뜻이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는, 특히 교육부는 미래사회를 준비하기 위한 교육을 지향한다는 취지에서 인문학을 축소하는 대신 공학 분야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이미 실시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2016년 상반기에 대학사회를 요동치게 했던 '프라임사업'이다.

'프라임 사업'은 인문·사회계의 학생 수를 줄여서 공과대학의 학생 수를 늘리겠다는 것을 그 근본 취지로 삼고 있다. 사회의 여건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서 인류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새로운 인재양성 프로그램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한 연구와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전제조건으로 여러 가능성을 따져본 후에 조심스럽게 적용돼야 실패할 확률이 낮다. '미래지향적'이라는 미명 아래 근시안적인 교육정책을 남용할 때, 국민은 혼란스러워하고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질 뿐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그 인공지능과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반발심 또한 커지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교육부는 이제부터라도 일방적으로 인문학을 축소하려는 정책보다는 휴먼 3.0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인문학자가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문학자들로 하여금 첨단과학을 지향하는 이 시대에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면서, 인류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인간상을 도출해내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계산적이고 치밀한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감성적인 인간은 당황했으며, 심리적인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기계와 경쟁하면서 인간은 한정적인 계산능력 때문에 상대의 수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기계에 비해 열등한 존재일 뿐인가? 기계와 다른 인간적인 감성과 몽상은 인류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것인가? 왜 우리는 만물의 영장임을 자부하면서도, 인간이 만든 기계에 지배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일까? 앞으로 점차 더 확산될 인공지능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가치 있는 답변은 인간만의 고유한 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그것을 또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답변을 잠재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알파고에게 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도전 정신과 패기 그리고 겸손함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단서로 휴먼 3.0 시대의 인문학은 인간만의 창의력, 상상력, 직관, 통찰력, 감성, 통합적 감각, 융통성,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공감 능력 등의 개념들을 새롭게 탐구하면서 인간의 미래에 희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병준 인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