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직도 '전설'로 내려오는 시내 모처에서 몇 차례 있었던 고교생 난투극의 장본인들이다. 바다 사나이답게 다소 거친 이미지를 지녔던 그들을 맞닥트리기라도 하면 학창시절에 필자도 슬그머니 뒷걸음쳤던 기억이 있다. "쑤고" 혹은 "물고" 라고 불렸던 인천수산고 학생들의 이야기다.

<굿모닝인천> 취재를 위해 얼마 전 인천수산고(현 인천해양과학고)의 졸업앨범을 들쳐보았다. 학교가 처음 둥지를 튼 곳은 북녘 땅이었다. 1926년 6월16일 황해도의 섬, 용호도에서 '용호도공립수산보습학교'의 간판을 달고 개교했다.

용호도(龍湖島)는 황해도 옹진군 동남면에 속하는 섬으로 여의도 보다 약간 작다. 조기 어장의 전진기지였으며 주변에서 새우, 전어, 민어, 갈치 등이 많이 잡혔다. 김과 다시마를 양식했으며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했기 때문에 어민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작은 섬이지만 수산학교가 들어서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1953년 휴전선이 그어지자 이 학교는 그해 6월 피난 보따리를 급히 쌌다. 인천으로 건너와 북성동에 임시 교사를 마련하고 경기수산고의 이름으로 다시 문 열었다. 이후 도화동으로 잠시 이전했다가 1962년 월미도로 옮겨 오랫동안 그곳에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 인천 앞바다의 영종도, 덕적도, 대부도, 강화도를 비롯해 백령도, 연평도는 물론 충청도 섬,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한동안 인천은 물론 수도권 일대의 바다(해양) 관련 직업군 주요 포스트는 대부분 이 학교 출신들이 차지할 정도였다. 이후 인천수산고로 개명했고 현재는 인천해양과학고의 간판을 달고 연수구 옥련동에 터를 잡고 있다.

이 학교는 6·25 전쟁통에 남쪽으로 내려 온 '피난학교'다. 올해 학교 문을 연 지 남북한 시절을 합쳐 딱 90주년이 되었다. 뜻깊은 해를 맞아 재학생과 동창회가 함께 옛 학교의 흔적을 탐방하는 '홈커밍데이'를 추진해보면 어떨까.

나뉜 서해 바다이지만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은 남과 북을 넘나들며 서로 만난다. 바다 사나이들의 기개가 꽁꽁 얼어붙은 이 바다를 시원스럽게 터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해의 창파를 무대로 삼고서 미래를 이상하는 우리의 학원." 이 학교의 교가 첫 소절이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