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옥 정치부장
▲ 윤관옥 정치부장

기대를 모았던 정부의 서해 5도 어민 지원대책회의 결과는 실망 수준에 가깝다.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 주재로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대책회의엔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외교부, 국민안전처, 국방부 등 관계부처 간부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댔지만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윤 차관은 회의석상에서 "서해 5도의 특성상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단속엔 분명히 제약과 어려움이 있다. 이를 악용한 중국어선이 우리 수역을 침범해 불법조업을 자행하고 있고 그 방법도 교묘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까지는 국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다. 이어 윤 차관은 "어민들을 위해 서해 5도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78개 지원사항이 추진되고 있지만 지원방안을 원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관계부처의 긴밀한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언가 실질적인 대책이 나오리라 잔뜩 기대를 품었던 서해 5도 어민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부터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 놓고 다시 생각해보겠노라'는 '무책임한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회의 결과였다.

국가의 3요소로 통상 국민, 영토, 주권을 꼽는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그건 국가가 아니란 얘기에 다름아니다. 서해 5도를 품고 있는 인천이 무너지면 국가의 존립 기반도, 국가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의미마저 상실하게 된다는 말이 된다.

서해 5도는 어떤 곳인가. 질곡의 현대사는 6·25전쟁 이후 남북간 긴장의 상징이자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화약고와도 같은 물리적 공간으로 지금껏 대표되고 있다. 북한과 마주보며 인천시 옹진군에 속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5개 크고 작은 섬이 서해 5도다.

군사적으론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경계지점이 되면서 서해 5도 섬주민들은 잇단 어민 남북, 두 차례의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바람 잘 날 없는 고통을 묵묵히 감내해와야만 했다. 설상가상 중국 어선들이 무차별적으로 영해를 침범해 불법 조업을 일삼으면서 이제는 생계의 위협에 처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내몰려 있다.

오죽하면 연평 어민들이 지난 5일 직접 어선을 물고 바다에 나가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일까지 벌어졌겠는가. 여기에 더해 최근엔 남북의 군사적 진공 수역이랄 수 있는 한강 하구까지 중국 어선들이 몰려와 어로행위를 벌이면서 수산물을 싹쓸이하는 지경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금 우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내놓은 대책은 '또 다시 검토하겠다'이다. 이쯤 되면 서해 5도 섬주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이유를 먼 데서 찾을 필요가 없지 않는가.

인천경실련이 인천 앞바다를 점령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서해 5도 어민들을 위해 공익소송을 추진하고 나선 이면에는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섬주민들의 근본적인 회의가 담겨있다고 봐야 한다. 영토와 국민 재산을 제대로 지켜지 못하는 정부가 제구실을 못하니 법정 공방을 통해서라도 어민들의 피해보상을 받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읽힌다. 핵심은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인 피고인인 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될 것이란 점이다.

마땅히 헌법상 권리를 보장받고 누려야 할 국민들이 서해 5도를 속속 버리고 떠난다면 그 후사는 과연 누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서해 5도 주민들의 말 못할 고충은 간단한 통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인천시가 집계한 서해 5도(우도 제외) 주민등록인구 동향을 보면 지난 2014년 5월 5344세대(9315명)이었던 것이 2015년 5월 5197세대(9171명), 올해 5월 4110세대(9340명)이다. 인구는 비슷한 숫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세대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섬을 버리고 뭍으로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진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제시되고 즉각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무소속 안상수(인천 중·동·강화·옹진) 국회의원은 사문화돼 가는 서해5도지원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해 서해 5도 주민들의 안전과 거주환경, 어민 생계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각오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인천 남동갑) 의원도 '중국어선 등 외국어선의 서해5도 주변수역 조업에 따른 서해안지역어업인 지원 특별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지난 19대 국회 때 내놨지만 해당 상임위에서 차일피일하다 자동폐기된 법안이다. 오늘 개원식을 갖는 20대 국회의 진정성을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정부는 중국 당국을 상대로 강력한 집안 단속을 주문하는 외교적 노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한 몸이 돼 서해 5도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 /윤관옥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