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인천 편집장


"암표라도 사서 가겠으니 자리 하나만 부탁합니다" SNS를 통해 이 모임이 열린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다. 어물쩍하다가 예약 신청하는 것을 깜박했다. 결국 당일 오전 주최 측에 전화해서 통사정했다.

지난 5월27일 밤 7시30분 손장원(인천재능대 실내건축학과) 교수가 진행하는 '환등기로 보는 인천 근현대'라는 모임이 열렸다. 장소는 중구 개항장에 있는 1890년대 일본 하역회사 건물이었던 카페 '팟알' 다다미방 2층이다.

공개되지 않은 1945년 이후 인천의 건축물 사진 44점을 환등기로 보여준다. 게다가 인천의 근현대 건축물의 내력을 자신의 몸 보다 더 많이 꿰뚫고 있는 손 교수가 설명한다. 그것도 개항장 오래된 건물 2층 시원한 다다미방에서 진행한다. 이런 '환상적' 조합은 그 동안 없었다.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는 '암표'를 운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너 댓 평짜리 다다미방에 서른 명 넘는 사람들이 들어찼다.

인천시립박물관 조우성 관장 등 낯익은 얼굴도 있었지만 대부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체면 불구하고 다닥다닥 바투 앉았다. 그날은 금요일 밤, 이른바 '불금'이었다. 슬라이드가 돌아가기 전 그들은 아날로그 감성으로 금요일 밤을 불태울 채비를 마쳤다.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에는 적산 가옥들이 많았다. 친구네 집 다다미방에서 TV로 김일 프로레슬링을 보고 나면 우리는 격하게 박치기를 흉내 내곤 했다.

오랜만에 푹신한 다다미방에 앉아있으니 갑자기 레슬링이 하고 싶은 짓궂은 마음이 들 즈음 방 안의 불이 꺼졌다. 이윽고 낡은 환등기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흰 벽에 빛을 쐈다. 지금은 사라진 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 건물, 이제까지 위치를 잘못 알았던 아키다 별장, 인천항 주변의 운송 회사 관련 건축물 등이 눈앞에 펼쳐졌다. 슬라이드가 넘어갈 때 마다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인천 가치 재창조'는 거창한 정책 포럼이나 학술 세미나로 되는 게 아니다. 시민들이 '불금'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게 하는 이런 모임이 인천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재창조하는 것이다. 환등기를 'magic lantern(매직 랜턴)'이라고도 부른다. 시내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이러한 환등기들이 켜질 때 인천 가치 재창조는 진정한 '매직'이 될 것이다. / 굿모닝인천 편집장